"한국 대기업 투명성·빚축소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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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최근 한국 경제의 불안이 지나친 낙관론과 구조조정의 지연에서 비롯했으며,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둔화세로 돌아섬에 따라 전망도 밝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코리아 소사이어티(회장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주최로 11일(현지시간)뉴욕 시티그룹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 구조개혁' 세미나에서 이같은 시각이 드러났다.

토론자로 나온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에드워드 그래엄 수석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현 경제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한다" 며 "재벌의 투명성 확보와 부채 축소가 가장 시급한 과제" 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재벌은 영업에서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제대로 못낼 형편" 이라며 "구조조정을 위해 자산을 내다팔려고 해도 투명성이 부족하니 제대로 팔릴 리가 없다" 고 꼬집었다.

세계은행의 대니 립지거 금융담당이사는 "미국에서는 민간차원의 구조조정 펀드가 많아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뤄지고 은행들도 제때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해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 고 말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조이디프 무커지 국가신용평가 담당이사는 "한국의 신용등급은 국내총생산이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낮은 편" 이라며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 긴축 위주의 거시경제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면 신용등급이 올라가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등급은 떨어질 것" 이라고 경고했다.

샐러먼 스미스 바니의 루이스 알렉산더 영업이사는 "세계적으로 경기 하강 국면임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는 시장경제 체제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더 한층 노력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사공일(司空壹)대외경제통상 대사는 기조 연설에서 "국민과 정부 관료들 사이에 자만감과 개혁 피로감이 누적돼 있는 것은 사실" 이라며 "금융시장 불안정과 대외 여건 악화로 한국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 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앞으로 6개월 동안 구조조정 노력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경우 매년 5~6%의 안정적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오종남 국제통화기금(IMF)대리대사는 "한국 경제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 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여러가지 날카로운 지적이 나왔다.

한 참석자가 "한국에서는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를 찾기 어렵다. 공장이 문을 닫고 회사가 망했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했다" 고 말하자 한국측 답변자는 "공장 문을 닫는 것이 경제개혁의 상징은 아니지 않는가" 라고 답했다.

또 "한국에는 소액 주주들의 힘이 약해 지배구조가 왜곡된 기업이 많지 않느냐" 는 질문이 있자 한국측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일부 사안에 대해 경제 부처와 법조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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