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기업들] 1. CEO가 '제값'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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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불황이라고 야단이지만 탄탄한 경영으로 헤쳐나가는 기업들이 많다.

최고경영자가 제때 올바로 결정하고, 노사가 한몸이 돼 구조조정을 하고, 앞선 기술력으로 새 상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무대로 판로를 개척한 결과다. 불황을 이기며 앞서가는 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5회 시리즈로 소개한다.

한국도자기 김동수(67)회장은 지난달 말부터 판촉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金회장은 회사가 잘 돌아갈 때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일임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해지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인다. 金회장은 불황 때 광고비를 두배로 올린다.

한국도자기는 이달부터 월광고비를 그전의 두배인 5억원으로 늘렸다.

金회장은 "불황 때 대부분 기업들은 광고를 줄이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고 말했다.

한국도자기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광고비를 97년의 두배로 늘렸으며, 그 결과 국내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켰고 외국산 도자기의 국내 진입을 억제하는 효과도 거둔 것으로 자체 평가했다.

이 회사 김무성 이사는 "광고비는 당장 성과가 안보이는 지출이라서 오너의 결심이 없으면 늘리기 어렵다" 고 말했다.

◇ 위기일수록 빛나는 CEO의 결단〓DPI(옛 대한페인트잉크)의 한영재 회장은 90년대 들어 경쟁력 있는 사업부서를 떼내 외국 업체와 합작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잘되는 사업부와 안되는 사업부가 함께 있으면 선진업체와 제휴하기 어렵고 기술개발도 늦어진다고 판단했다.

당시 국내 도료업체들이 국내시장에 안주했지만 韓회장은 달랐다. 국내 1위였던 선박용 도료사업부를 네덜란드 다국적페인트 업체인 악조그룹과 손잡고 IPK㈜를 만들었다.

자동차 도료는 일본의 닛폰페인트와 제휴해 DAC㈜를 설립하는 등 페인트 사업부를 5개 회사로 쪼갰다. IPK와 DAC는 지난해 각각 1백억원 안팎의 순익을 내는 알짜 자회사로 탈바꿈했다.

위기 상황에 최고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사운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조조정을 제때 결심하지 못하거나 필요할 때 투자를 망설이면 멀쩡하던 기업도 벼랑끝에 몰린다.

외환위기 직전 30대 그룹 가운데 3년도 안돼 10여개 그룹이 탈락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성공하는 기업 CEO의 일곱가지 특징' 으로 ▶신념이 있다▶때를 놓치지 않는다▶초기에 주도권을 잡는다▶나를 버린다▶반대파도 포용한다▶핵심과제에 집중한다▶측근보다 현장을 중시한다를 꼽았다.

이 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선진국 1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최고경영자의 교체를 전후해 기업이 크게 달라졌다" 며 "선진기업은 최고경영자를 수년.수십년에 걸쳐 찾고, 일단 맡기면 전권을 주며, 거액의 연봉과 스톡옵션 등으로 우대한다" 고 강조했다.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은 경기순환에 관계없이 연구개발 투자를 실행한다.

정문술 사장은 "중견기업들은 제품개발로 먹고사는데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면 미래가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회사 매출에 버금가는 2백억원을 들여 신종 반도체 검사장비 개발에 나섰고, 그 열매를 올해 거두었다.

올해부터 출시한 초고속 칩마운터를 대부분 해외로 수출해 6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외환위기 때 알짜 계열사부터 매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까운 회사도 많았지만 당시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박종석 한화그룹 부회장은 "당시 계열사 매각에 주저했더라면 그룹 전체가 벼랑에 몰렸을 것" 이라고 회고했다.

◇ 적기 투자가 기업운명 좌우〓삼성전자도 외환위기 직후 위기를 맞았다. 98년 6, 7월에 월간 적자가 1천억원을 넘었다.

삼성전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되는 사업에 대한 집중투자를 선택했다. 직원 40%를 감원하고 72개 사업을 매각했다. 그 결과 97년 2백86%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말 85%로 낮췄다.

국내기업들이 생존 자체에 숨가빴던 98년 반도체 분야에만 1조원을 쏟아부었다.

일본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근 "어려움을 겪는 일본 기업들은 삼성전자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것" 이라고 보도했다.

효성물산의 과다한 부채로 부도 위기까지 몰린 효성은 물산.중공업.생활산업.T&C 등 주력 4개사를 합친 뒤 세계 시장에서 1~2위를 할 수 있는 사업만 골랐다.

이때 선택한 것이 스판덱스.타이어코드와 페트병. 효성은 계열사를 판 돈을 이곳에 투자했다.

이제 스판덱스는 세계 2위로 올라섰고, 페트병은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다. 타어어 보강재인 타이어코드는 세계 1위 생산업체가 됐다.

효성 김충훈 전무는 "적자 나는 사업은 물론 돈을 벌더라도 핵심 역량이 아닌 사업은 과감하게 처분했다" 고 말했다.

LG전선은 사양산업인 동케이블 분야에서 철수하고 광케이블쪽으로 선회해 변신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정보통신용 회선이 광케이블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99년 초부터 이 부문에 4백10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광케이블 분야 매출이 지난해 1천3백억원에서 내년에 2천5백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신 지난해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동케이블 사업은 점점 줄이고 있으며, 곧 철수할 예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수석연구위원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기업의 성공은 운이 아닌 실력" 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올해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는 대신 연구개발 투자에 1조원을 투입했다. 신차 개발에 미래가 달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선제 투자를 경영목표로 삼았다. 남보다 투자를 앞서 해야 생산도 앞서고 시장도 잡는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정일재 상무는 핵심 역량을 강조했다.

▶최고경영자의 능력에 비해 사업영역이 지나치게 넓거나▶의사결정이 더딘 등 경영 코스트가 높은 기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글싣는 순서>
1 CEO가 '제값' 한다
2 기술력은 언제나 통한다
3 시장은 뚫기 나름
4 구조조정, 노사가 함께 한다
5 투명경영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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