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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④ 맹사성의 청백리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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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맹사성 고택에서 담장 밖으로 나아가면 먼발치에 九槐亭(구괴정)이 보인다. 세종대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권진, 좌의정 맹사성이 함께 건립한 정자다. [사진 이영관 교수]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장찬우 기자

맹사성[孟思誠, 1360~1438] 고불 맹사성은 1360년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으며, 최영장군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386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세종대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의 반열에 올랐다.

고불 선생이 거처했던 고택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깜짝 놀랐다. 전국 각지의 고택들을 방문해봤지만, 정승을 지낸 선생의 고택이 이토록 소박할 수 있을까. 이 집은 본래 최영장군이 지은 집인데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물려받게 되면서 맹사성 고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의 고택은 정승의 품격에 걸맞지 않게 정면 4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기와집이다. 지방 고을의 군수를 지낸 사람들의 고택들도 수십 칸에 달하는 저택을 소유한 예가 많은 것을 생각해 보면, 소박한 고택에서 그의 청백리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맹씨 가문의 화려했던 영화만큼은 거대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고고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면 고불의 정신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 고택의 역사적 의미 또한 남다르다.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기는 했지만, 고려시대의 건축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서 ‘ㄷ’자 형태를 띄고 있다. 이곳은 맹씨행단이라 불리기고 한다. 고불의 부친인 맹희도가 은둔하며 후학양성에 매진하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내에는 고불의 부친이 후학을 가르쳤던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영조의 친필 어제 사액인 杏亶(행단)이 고택 입구의 기념관에 보관되고 있다. 기념관에는 고불의 유품인 호패, 금동연화반, 금동연화잔, 그리고 갓끈 등이 남아있지만 아쉽게도 방문객들에게 상시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맹사성과 그의 부친과 조부를 모셔놓은 세덕사에도 청백리 정신은 묻어난다. 사당이라 불리기에 민망할 정도로 아주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고불의 청백리정신을 해칠까 봐 후손들께서 너무 조심하다 보니 이토록 단출한 사당을 지어놓은 듯싶다.

 고택에서 담장 밖으로 나아가면 먼발치에 맹사성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던 九槐亭(구괴정)이 보인다. 청렴 결백했던 고불 선생도 구괴정에는 한껏 사치를 부렸는가 했더니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가 구괴정에 얽힌 사연들을 간명하게 설명해주었다.

 “구괴정을 살펴보시면 선생의 고택에 비해 화려하게 지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사성의 청백리정신을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자는 고불 선생이 혼자서 건립한 건물이 아닙니다. 세종대에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권진과 함께 좌의정이었던 맹사성이 합력해 건립한 정자입니다. 삼정승이 지었다 해서 삼상당(三相堂)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보시다시피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정자가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 마을주민들을 위로하는 공간이기도 했고, 지나가는 나그네의 쉼터로 활용되기도 했단다. 그리고 맹사성은 시문에도 능했고 향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만들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효성도 극진했던 효자였다.

 고불을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물욕을 경계하면서 정신적인 행복 추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있지도 않았고, 물질적 권위를 뛰어넘는 정신적 가치와 신분적인 위계질서와 체면에 대한 욕구가 선비들을 물질적 탐욕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보호한 측면도 있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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