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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전·월세 상한제 명분은 좋은데 실효성은?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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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전세와 월세 보증금 인상폭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총선을 통해 여야 모두 도입하겠다고 공약을 했고 연말 대선을 대비한 서민 표심을 잡기 위해 입법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가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가 입법을 추진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누리당은 전셋값 폭등 위험이 큰 지역을 대상으로 전셋값 상한선을 제한하도록 할 계획이다.

민주통합당은 전국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월세 인상률 범위도 5%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또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계약 연장을 청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도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다.

전셋값 일시적 폭등 불가피

전문가들은 만약 관련법이 통과되면 실제로 시행되기 직전까지 전셋값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제도를 도입한 후 당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전세금을 올리는 집주인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야당이 추진하는 대로 계약갱신청구권까지 도입되면 상승폭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4년간 전·월세 가격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의무 전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자 전셋값이 급등했다.

1989년에만 전국 전셋값이 17.5%나 뛰었고, 다음해에도 16.8% 상승했다. 2년간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못하는 집주인이 향후 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해 한꺼번에 올렸기 때문이다.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이 점은 인정한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이 다르다. 길게 보면 결국 시행하지 않을 때보다 상승폭은 매년 낮아질 것이므로 서민들의 주거는 더 안정된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1989년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2년간은 전셋값이 폭등했지만 1991년부터 IMF구제금융 위기 직전까지 전셋값은 안정됐다.

‘이면계약’ ‘공급감소’ 등 부작용 발발할 수도

다만 전·월세상한제가 시장경제 원리에는 어긋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가격 상승을 막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이면계약’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식적인 계약서에는 임대료 인상폭을 낮게 쓰고 실제 계약은 높게 하는 것이다. 전세 물건이 부족하면 집주인의 이런 요구를 세입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임대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월세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대료를 규제했더니 주택공급이 줄었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뉴욕 전셋값이 급등하자 당시 뉴욕시는 ‘임대료규제법’을 도입했다. 

그런데 임대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집주인이 이후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지 않고 대부분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도심의 기존 주택은 낡고 슬럼으로 변했다. 뉴욕 할렘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고 한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오피스텔 등 다른 상품 공급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서민 주거환경은 더 열악해 지는 것이다.”

부분적 상한제 도입하면 전세난은 여전할 수도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대로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에만 부분적으로 전·월세 가격을 규제하면 어떨까.

문제가 간단치 않다. 상한제 적용지역에서는 기존 임차인이 계속 거주를 희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신규 임차인이 들어오긴 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수요가 전·월세상한제 적용 지역 주변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상한제 적용지역 주변의 전·월세 가격이 크게 올라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전히 세입자의 전세 불안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상한제 적용 대상 지역을 정하는 기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올라야 대상지역이 될지, 해제 절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데 따른 행정력 낭비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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