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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눈을 돌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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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5년 이상을 달려온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가? 다행히 최근 국내외 경제지표들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서민경제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내 경기의 둔화 추세가 완만해지고 있다. 성장률은 지난 1분기 3% 수준으로 추정되며, 하반기 이후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연간으로는 4% 내외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우리 경제를 다시 한 번 도약시키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이 없이는 복지의 근간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총선 과정에서는 성장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각종 복지 공약만 난무했다. 정치적·이념적 편견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경제성장을 좌지우지하기 어렵다거나 성장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분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인식 모두 근거가 희박하다.

 정부는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 격차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경제체제, 즉 북한의 폐쇄적 공산주의 체제와 남한의 개방적 자본주의 체제로 대부분 설명될 수 있다.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남한의 경제성장이 1950년대까지 부진했던 것은 기업가 정신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도록 한 당시의 경제정책에 기인한다. 반면 1960년대 이후에는 정부가 환율을 현실화하고 수출을 장려해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도록 독려함으로써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현재에도 정부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는 크다. 소비나 투자와 같은 수요를 부양하라는 뜻이 아니다. 1990년대에 경험했듯이 수요부양정책은 물가를 앙등시키고 부실을 누적시켜 결국 파국을 초래하게 된다. 그보다는 경제의 공급능력을 늘리기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향후 10년간 4%대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관건이다. 교육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켜 인적자본을 확충하고, 근로친화적인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또 시장경쟁을 촉진해 기업들이 기술 투자와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도록 하며, 민영화 등을 통해 시장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대외개방을 확대해 세계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우리나라가 선점하도록 해야 한다.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기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조화시키기 쉽지 않은 것은 정부의 고차원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저숙련 근로자들이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이들의 근로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내실 있는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참여를 지속적으로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시중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흔히 제로섬(zero-sum) 관계로 인식한다. 물론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영세한 규모의 중소기업이 너무 많다. 이들은 기술투자, 해외시장 개척, 브랜드 구축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현장 밀착적인 기업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하라 사막도 한때는 울창한 밀림지대였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양보다 증발되는 수분이 많게 되면 사막화가 필연적이듯 경제도 끊임없이 효율성과 창조력을 높이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해 사막화되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적극적인 도전에 나설 때 우리 경제도 선진국에 진입할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