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뇌물' 경찰관 승용차 열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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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룸살롱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경찰관 한모(43·구속) 경사의 자택을 지난달 30일 압수수색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수사관들은 한 경사의 SM7 승용차 문을 연 순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의류와 신발·가방·향수 등 각종 명품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마치 명품숍을 옮겨 놓은 듯 하나같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물품들이었다.

 검찰 수사관들은 당시 한 경사가 ‘룸살롱 황제’ 이경백(40·수감 중)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정황을 잡고 한 경사 자택과 승용차를 압수수색하던 참이었다. 한 경사 승용차 조수석에는 아르마니 재킷과 에르메스 니트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인 디스퀘어드의 운동화와 프라다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뒷좌석에는 돌체앤가바나 청바지와 모자가 널브러져 있었고 몽블랑 벨트도 발견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손녀가 입어 화제가 됐던 몽클레어 브랜드의 운동화도 보였다.

 조수석 글로브 박스 안에는 향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르메스·불가리·샤넬 등 명품 향수들은 각각 수십만원에 이르는 고가품이었다. 트렁크에서도 에시워스 골프화와 아디다스 골프화가 발견됐다. 한 경사 차에서 나온 명품만으로도 압수물 박스 하나를 채우고 남을 정도였다. 검찰은 한 경사의 자택에서도 100만원에 육박하는 구찌 지갑 등 각종 명품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에 대해 한 경사는 검찰에서 “향수 등 몇 가지를 빼고는 모두 모조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한 경사가 유흥업소 업주들로부터 명품을 상납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를 계속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또 한 경사가 일주일에 2~3회꼴로 자주 골프장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골프 비용을 누가 지불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검찰은 한 경사가 유흥업소 관계자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확인해 골프 비용을 대납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한 경사는 대납 의혹을 부인했다.

 한 경사는 유흥업소 밀집지역인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오래 근무했으며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계를 거쳐 현재 여성가족부에 파견돼 있는 상태다. 그는 이모(42·구속) 경사 등 동료 경찰관 3명과 함께 이경백씨로부터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검찰은 이씨 등으로부터 “한 경사가 서울시내 유흥업소 수십 곳으로부터 매달 수백만원씩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한편 검찰은 이씨로부터 1인당 평균 5000만원 정도씩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체포된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정모 경위 등 경찰관 3명을 14일 구속했다 . 검찰은 또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장인 H 총경 등 총경급 경찰 간부 2~3명이 유흥업소나 부하 직원들로부터 금품을 상납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해 조만간 이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경찰관들의 연루 사실이 계속해 불거져 나오고 있다”며 “룸살롱 업주 이경백씨가 검찰 수사관들에게도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경찰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박진석·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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