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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역사를 바꾼 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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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역사의 물길은 ‘우발(偶發)’이라는 바위를 만나 크게 방향을 틀곤 한다. 우발은 사건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의 64년 선거사(史)에는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우발적 인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이회창의 아들 정연이고 다른 이는 나꼼수 김용민이다.

 정연은 박사학위를 위해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체중을 줄였다. 아들의 이런 행동만 없었다면 1997년 이회창은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5년 후 2002년엔 병역 브로커 김대업이 사건을 이용했다. 이회창은 청와대 문턱에서 다시 쓰러졌다. 이정연의 병역기피가 없었다면 김대업도 없었을 것이다.

 청년 한 사람이 별 생각 없이 수 ㎏을 뺀 게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았다. 48년 건국 이래 98년까지 국가발전을 주도한 세력은 보수·우파였다. 그런 보수·우파가 대통령 후보의 아들 때문에 50년 만에 권력을 진보·좌파에 내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권교체를 위한 분위기는 깔려 있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의 보수·우파는 절대적으로 부패했다. 90년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3당이 합쳐버렸다. 3당 합당은 국가를 둘로 쪼갠 분열의 죄업이다. 지역적으로는 영남·충청이 합쳐 호남을 구석으로 몰았다. 이념적으로는 보수끼리만 야합했다. 보수·우파의 원죄(原罪)다.

 원죄의 휘발유에 징벌의 불을 붙인 게 이정연이다. 그로 인해 김대중·노무현 10년 집권이 열렸다. 진보·좌파에 이정연은 구세주였다. 그러나 보수·우파에는 지우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다. 그로 인해 보수·우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모르는 집단이 되었다. 보수·우파의 좌절 속에서 진보 10년은 굽이쳐 흘렀다.

 4·11 총선은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19대 국회 4년 안에 한반도 운명이 요동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운명은 큰데 보수·우파는 쪼그라들고 있었다. MB가 실패하면서 권력을 다시 내줄 처지였다. 여소야대가 되면 12월 대선에서 이겨도 ‘반쪽 대통령’이 된다. 그렇게 마음 졸이고 있을 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김용민은 이정연보다 더 드라마틱(dramatic)했다.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사퇴했다면, 그리고 목사 아버지와 함께 시골 기도시설에 들어갔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마도 여소야대는 예정대로 도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갔다. 동영상에서는 울면서 “평생 갚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선 반전(反轉)을 노렸다. 투표를 3일 앞두고 시청광장 나꼼수 집회에 나갔다. 지지자들은 매스게임으로 ‘조’라고 만들었다. ‘ㅈ’ 받침을 뺀 것이다. 김용민은 같은 나꼼수와 함께 퍼레이드를 벌였다. 한 멤버는 연단에 올라 청와대 쪽을 가리키며 “저 들”이라고 외쳤다. 그 옆에 김용민이 있었다.

 김용민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좌파의 의회 집권을 막았다. 사회적으론 나꼼수라는 각설이패가 대청마루에 오르는 걸 막았다. 정신적으론 한국 사회가 아직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걸 증명했다. 나꼼수가 애용하는 표현대로, 생물학적으론 침묵하는 양들이 시끄러운 돼지보다 무섭다는 걸 보여주었다.

 김용민은 스스로 자신을 시사돼지, 막말돼지라고 칭한다. 돼지는 그에게 애칭인 셈이다. 한국 역사에서 돼지라는 단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 돼지 김용민은 국회의원이라는 립스틱을 바르려 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돼지의 꿈’이었다. 그와 나꼼수는 기형적인 인기에 취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김용민에게 민주당은 끌려갔다. 한술 더 떠 문재인은 그런 나꼼수를 부산 지역구로 불렀다. 모두 허망한 결과가 됐다. 한줌 거품인기 속에서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보수·우파에 이정연의 죗값으로 10년은 억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역사의 냉혹한 메시지가 있었다. 처절하게 반성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민의 죗값은 얼마일까. 조용한 양들은 요란한 돼지에게 얼마를 매길까. 4년인가, 5년인가, 아니면 10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