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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MB 털어낸 박근혜 전략에 말려들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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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호 04면

민주통합당은 4·11 총선 패배에 따른 후폭풍이 크다. 한명숙 대표가 13일 사퇴했지만 다음 전당대회까지 과도 체제를 이끌 지도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도부 총사퇴론이 나오지만 선(先)정비, 후(後)사퇴의 목소리도 크다. 최근 약진한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구(舊) 민주계 진영이 격돌할 조짐을 보인다. 구 민주계 진영의 중심엔 박지원(69·3선사진) 최고위원이 있다. 여기에 차기 대선 주자들이 나서서 힘겨루기를 할 경우 당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친노·486 세력에 밀려났던 호남의 구 민주계에선 당 재정비론이 거세지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조기등판론까지 나온다. 4·11 총선 패배 직후 처음으로 지도부 총사퇴론을 폈던 박지원 최고위원을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4·11총선 … 이래서 졌다 vs 이래서 이겼다

-총선 결과를 놓고 민주당 내에선 해석이 제각각이다. 어떻게 보나.
“패배다. 국민 모두가 ‘민주당은 독자적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거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명박정부의 총체적 실정, 부정부패, 비리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127석밖에 얻지 못했다.”

-결과를 어떻게 예상했나.
“새누리당이 무서운 정당이라는 건 잘 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121석을 건졌다. 민주당은 지면 70~80석으로 전락하는 당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 때 현장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하는 시민을 만난 적이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을 가장 잘해준 분이 이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나경원 후보가 47%를 받았다. 무서운 당이다. 그래도 이번 총선에선 민주당이 과반수 가깝게 차지하고, 통합진보당이 10석 좀 넘어서 160석 이상은 된다고 봤다.”

-패인이 뭐라고 보나.
“세 가지다. 첫째는 무리한 모바일 경선 탓에 당의 단합이 안 됐다. 둘째는 공천 실패, 셋째는 전략 부재다.”

-모바일 경선은 자랑을 많이 하지 않았나.
“모바일 경선이란 게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와 같은 전국 단위 선거에선 20~30대의 정치 참여를 획기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지역구 단위 선거에선 무리였다. 노인 인구가 40%대에 달하는 농어촌에 적용하다 보니 자녀 명의로 휴대전화가 등록돼 있는 경우가 많고, 젊은 층이라 해도 회사 명의로 돼 있는 경우가 있다. 과열 경쟁과 법 위반으로 좁은 지역구 내에서 고소·고발이 잇따랐다.”

-공천은 어떤 점이 잘못인가.
“내가 공천 관련 비공개 회의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통합을 했는데 여러 세력이 같이 가야 한다. 한 세력이 독식을 하면, 더구나 대권을 생각하는 세력이 독식을 하면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러면서 ‘친노 대통령 안 된다. 문재인 안 된다, 그럴거면 나도 나온다’ 이런 얘기를 했다. 정치는 다른 세력에 대한 배려와 자기 세력에 대한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 정신을 살려서 당선 가능한 공천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비례대표 같은 것은 민주계가 한 명도 없다. 완전히, 너무 소외시켰다. 게다가 전략도 없었다. 공천 물갈이란 게 결국 호남밖에 할 곳이 없다. 그렇다면 호남 먼저 과감하게 물갈이 공천하고 수도권에선 친노와 486을 솎아내는 방식으로 가야했다. 그런데 친노, 최고위원, 총선기획단 사람들 먼저 공천하고 호남은 나중에 물갈이를 했는데 누가 승복하나. 자기들은 다 빠져나가고… 수도권, 강원·충청권 위주로 선거 전략을 짜고 이 바람으로 낙동강 벨트에 가야 했는데 거꾸로였다. 10석 목표인 낙동강 벨트가 왜 중심이 됐는지 모르겠다.”

-김용민 막말 파동은 얼마나 영향이 컸나.
“물론 영향을 미쳤다.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 김용민 후보 문제가 보수층인 강원·충청·경기권에 영향을 미쳤다. 대응을 잘못한게 문제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처음 문제가 됐을 때 결정을 했어야 한다. 나중에야 ‘사퇴를 권고했으나 본인이 거부했다’는 식이었는데 그래선 안 된다. 대장장이도 쇠가 달구어졌을 때 내려치는 지혜가 있다. 우리 민주당은 식으면 때린다. 그래도 결정을 못하고 물속에 들어간 뒤에 때리는 이명박 대통령보다는 낫지만….”

-어떤 결정을 했어야 하나.
“나꼼수가 젊은 층 지지를 끌어들인 것은 사실이니 당으로선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생각이 달랐지만 40대 초반까지는 ‘어떤 경우든 안고 가야 한다’는 쪽이더라. 나는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8년 전 서른 살의 자유 분방한 한 방송인이 공영 방송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것이고, 본인이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과했다. 김용민 후보의 소양으로 봐서 국회의원이 되면 품격 있는 의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우리 당은 단호한 입장을 보였어야 된다. 자르려면 빨리 자르고, 안으려면 탁 안아서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계속 끌려다녔다.”

-민주당은 총선 과정에서 좌클릭했다. 선거에 도움이 됐나.
“크게 도움이 안 됐던 것 같다.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강원·경기·충청권을 놓치지 않았나. 진보를 지향하는 것도 좋지만 자꾸 극좌로만 가면 반대쪽을 다 누를 수 있다. 집권이 목표인 우리 당으로선 스펙트럼을 좀 넓게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원·충청 지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지역이다. 민주당은 왜 이 지역에서 졌나.
“우리가 통합진보당과 연대하며 지나치게 좌클릭한 데 대해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다.”

-당이 중도로 복원돼야 한다고 보나.
“좀 더 합리적 진보로 가는 게 좋고 최소한 중도세력을 안을 수 있는 정책을 함께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도 그런가.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안에 따라 다르다. FTA 문제에 대해 나는 처음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재협상 결과가 문제다. 재재협상을 해서 조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개성공단의 문제점이 있다. 제주 강정마을은 정부가 효율성만 따질 게 아니다. 일본은 재건축할 때도 마지막 한 명과 설득하고 대화한다. 대화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앞으로 당은 어떻게 정비돼야 하나.
“총선에 지고,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당원을 절망케 한 것엔 책임을 지는 게 좋다. 책임이란 최고위원 전원 사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당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새누리당의 행복으로 가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한 방안을 함께 논의해보자는 생각이다. 우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욕심 없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12월 대선까지 8개월 남았다. 강력한 대여 투쟁을 통해 민주당의 집권 필요성을 설득하고, 대권 후보 경쟁의 흥행을 성공시킬 수 있는 분이 나서면 좋겠다.”

-전당대회를 하면 당 대표직에 도전할건가.
“그런 얘기는 전혀 아니다. 나는 오직 정권 교체다. 법사위에 신경 써서 청문회에 집중하겠다.”

-문재인 등 친노의 영향력은 어떤 평가를 받았다고 보나.
“낙동강 벨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소수가 당선됐지만 득표는 40% 선이었다. 지역구도에 대한 타파 의식을 만드는 데 문재인 이사장의 기여가 컸다. 긍정적으로 본다.”

-안철수 교수의 조기 영입론이 강해지는데.
“좋은 인재이니 민주당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후보가 되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 당의 대권 후보들을 평정해야 한다. 우리 당엔 훌륭한 분들이 많다. 나는 이해찬 전 총리도 무시하지 못할 거라고 본다. 삶의 이력이 그렇고 실력, 경력, 능력을 두루 갖췄다. 지역도 충청이다. 김두관 경남지사도 마찬가지다. 이분들이 먼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국민과 당원으로부터 검증받고 인정받는 구도가 돼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지지도가 안 오르거나 약하다면 안철수 교수를 영입해서 우리가 한 번 내세울 수도 있을 거다. 어쨌든 안 교수가 들어와서 함께했으면 좋겠다.”

-안 교수의 FTA에 대한 입장이 민주당과 다르지 않나.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민주당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다. 그 정도의 조정은 우리 당과 안 교수 사이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안 교수는 대선에 출마할까.
“한다고 봐야 한다. 다만 과연 안 교수가 얼마나 치열한 권력욕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이 될 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아주 기뻐하셨다. 막상 서울대 총장을 할 때는 정확하게 두 달에 한 번씩 언론 플레이를 하더라. 심지어 가수 ‘비’의 어머니가 자기 와이프와 친구라고 언론에 얘기하더라. 내가 감옥에서 신문을 열심히 봤다. 그런데 그분도 마지막 권력욕은 부족했다. 안 교수가 잊어버릴 만하면 등장하는데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얼마나 권력욕이 있느냐는 거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하고 싶어야 되는 것이다. (가톨릭) 추기경 뽑는 게 아니다. 자기 욕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치열한 권력욕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는 모르겠다.”

-안 교수가 정치를 한다면 왜 민주당과 할 것으로 보나. 새누리당과 할 수도 있지 않나.
“안 교수의 생각이 우리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멀지는 않다. 그러나 안 교수와 새누리당은 멀다. 우리는 좀 더 가깝다. 현실적으로 보면 새누리당엔 박근혜란 부동의 큰 산이 있고 우리에겐 아직은 작은 바위들이 있다.”

-제3당을 만들 수 있지 않나.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국민들은 양당제를 선호한다.”

-12월 대선 전망은.
“처음에 잘나가는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 없더라. 박찬종, 이회창, 고건 등등이다 그랬다. 박근혜 위원장이 지금 지지를 받지만 제대로 검증을 받지 않았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들은 이젠 좀 맑은 대통령을 선호한다고 본다. 안철수·문재인 같은 분은 맑은 분들이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좀 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대통령은 당선되는 게 아니라 당선시키는 거다. 당선되겠다는 사람의 권력의지도 중요하지만 참모들의 희생과 치열함이 같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총선에 졌다. 하지만 탁 털고 밀고 나가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의 총선 패배는 결코 약이지 독이 아니다.”

-총선의 가장 큰 변수는 뭐였나.
“역시 박근혜다. 실패하고 부패한 한나라당의 이명박을 털어냈다. 쇄신하고 깨끗한 새누리당의 박근혜로 차별화했다. 거기에 우리가 말려들었다.”

-왜 말려들었나.
“치열함을 상실했다. 국민은 준비가 됐는데 우리는 감나무 밑에서 요행만 바랐다. 입 벌리고 드러누워서 ‘될 것이다’라고 잘되기만 기대했다. 박근혜의 변하지 않은 모습을 조목조목 따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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