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내면…연예인 수십 명 뒷돈 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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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으로 처리한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트로피. A협회는 시상식을 주최하면서 일부 수상자들에게 돈을 받고 상을 판 것으로 드러났다. [김도훈 기자]

“이 바닥에선 돈 주고 상 받는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연예계 최대 비영리단체인 A협회(이하 협회) 내부 관계자의 고백이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협회는 구봉서·송해부터 신세대 걸그룹 원더걸스까지를 아우르는 사단법인으로 회원 수가 10만 명에 이른다. 이 협회가 연예인 등을 상대로 훈장·대통령표창 등 각종 상을 받게 해 주겠다며 일부 수상자로부터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는 ‘상(賞) 장사’ 외에 정부 후원 시상식과 지자체 행사를 개최하면서 예산을 빼먹은 의혹도 받고 있다. 매년 시상식 운영비 조로 나오는 정부 예산(8000만원)과 지방 가요제에 지원되는 지자체 보조금(2억~3억원) 일부를 횡령한 정황이 수사 당국에 포착된 것이다. 행사 경비를 부풀리고 행사 용역업체들로부터 이를 되돌려받는 수법이 동원됐다. 협회가 이렇게 챙긴 액수는 확인된 것만 최근 몇 년간 수억원에 이른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 수사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된 상태다.

경찰 수사 거쳐 서울중앙지검 송치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연말 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을 15년 동안 후원해 왔다. 유명 정치인들이 시상식에 참여하거나 협회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다는 소문이 돌고 민원이 수차례 제기되자 문화부는 2009년부터 시상식 후원(예산 지원)과 국가 훈포상 수여를 취소했다. 그러나 협회 측은 자체적으로 시상식을 열면서 마치 정부에서 훈장과 표창이 나오는 것처럼 홍보했다. 협회가 만든 시상식 홍보책자를 보면 시상 부문별로 ‘훈’ ‘대’ ‘문’의 표기가 보인다. 협회 한 관계자는 “훈은 훈장을, 대는 대통령표창을, 문은 문화부장관상을 뜻한다”며 “정부 훈포상이 취소됐는데도 마치 이런 상이 수여되는 것처럼 속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협회 이사장 S씨는 “훈이나 대, 문 등의 표기는 우리 내부용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며 “나중에 정부로부터 다시 훈장이나 표창이 나오면 정식으로 신청해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취재 결과 뒷돈이 집중적으로 오가는 부문은 공로상·예총회장상·사회봉사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 등급에 따라 ‘공정가격’도 정해져 있다. 사회봉사상은 300만원, 예총회장상은 500만원이 정가라고 한다. 돈이 모자라면 값을 깎아 주기도 한다는 게 협회 회원들의 증언이다. 취재팀은 지난해에만 10여 명의 수상자가 협회 관계자들에게 돈을 주고 상을 받았다는 증언을 들었다. 특히 무명이나 신인가수들을 상대로 한 상 장사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무대에 설 기회를 잡기 위해 스펙 쌓기용으로 수상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회봉사상을 받은 신인가수 B씨는 “협회 측이 예총회장상을 주겠다며 500만원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B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200만원만 주면 한 단계 낮은 사회봉사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해 돈을 줬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에도 300만원을 내고 사회봉사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인들 중에는 B씨처럼 돈을 주고서라도 상을 받으려 하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한다.

A협회는 대표적 지방가요제인 부산 현인가요제를 주최하면서 부산시가 지원한 예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부산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예인도 의혹에 휘말렸다. 협회는 정부 훈포상이 취소된 직후인 2009년 시상식 때 문화훈장 화관장이 수여된 것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해 상을 받은 한 유명 코미디언은 “원래는 훈장을 준다고 했는데 나오지 않아 실망스러웠다”며 “협회 측이 나중에 정식 훈장이 나오면 소급해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돈을 주고 상을 받았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하지만 그는 “관례적으로 큰 상을 받으면 협회 관계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수준이지 상을 대가로 돈을 준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 한 관계자는 “정부 훈포상이 취소됐는 데도 계속 수여되는 것처럼 속이고 뒷돈이 오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를 방치하고 있는 문화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5년 동안 수십 명이 뒷돈을 주고 상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협회 이사장 S씨는 “협회 산하 각 지회가 모아 본부에 전달한 돈을 시상식 운영비로 쓰기는 하지만 상을 대가로 돈을 요구해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저축은행 인사에게 돈 받고 대통령상

문화부가 후원하고 협회가 주관한 ‘선행연예인 시상식’도 문제다. 2008년 선행연예인 시상식에서 한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 P씨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협회 측 관계자가 P씨에게 “당신 장인이 영화감독이니 연예인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1000만원을 내면 대통령상을 받게 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협회 측은 2007년에는 한 유흥음식점 사장에게 200만원을 받고 선행연예인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줬다. 논란이 일자 문화부는 2009년부터 이 상의 후원과 정부 표창도 취소했다.

 포상을 위해 허위 공적서를 문화부에 상신한 사실도 드러났다. 협회 한 회원은 “실제로 봉사활동도 하지 않았으면서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에서 위문공연을 한 것처럼 꾸며 사회봉사상을 주는 일이 다반사”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한 번 상을 받은 사람이 다음 해에 재차 다른 부문의 상을 받기도 한다”며 “협회 이사회에는 수상자 명단만 통보할 뿐 사전에 적절한 수상자인지를 논하는 절차는 없었다”고 말했다.

유명 지방 가요제서도 뒷돈 거래

협회는 대표적 지방 가요제인 ‘현인가요제’를 치르면서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은 예산 중 일부를 횡령한 의혹도 받고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로 유명한 가수 현인을 기리는 가요제로 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 매년 8월 초 열린다. 이틀 동안 열리는 이 가요제는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정도로 규모가 큰 행사다. 경찰 수사 결과 협회는 자체 예산이 없는데도 마치 있는 것처럼 허위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부산시로부터 매년 2억~3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에 제출하는 결산보고서 역시 허위로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협회 관계자는 “결산보고서를 지자체에 매번 충실히 제출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횡령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담당 공무원은 “협회가 올린 보고서를 서류상으로만 검토할 뿐 실제 그렇게 쓰였는지 별도로 확인하지는 않는다”며 “횡령이 사실로 밝혀지면 환수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올해도 이 가요제를 치르기 위해 3억8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한 상태다.

 취재팀은 가요제 무대에 세워 주겠다면서 일부 무명·신인가수로부터 수백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신인가수 S씨는 “출연료는커녕 전야제 무대에 올려 주겠다며 협회 관계자가 200만원을 요구했다”며 “무대 만드는 데만 2억원이 들어가는데 그 정도면 싼값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지방 가요제 역시 돈이 오간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해 5월 협회 산하 한 지회가 창작가요제를 열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심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그 다음 날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수상자에게 결과가 개별 통보됐다. 협회 한 관계자는 “출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대상 수상자가 여러 명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주부가요제·실버가요제·트로트가요제 등 협회가 개최하는 여러 가요제에서 상을 받을 사람이 사전에 정해진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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