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리뷰] 중독 되지 않는 삶 '파블로프의 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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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전문인' 또는 '전문가'라는 이때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인격개조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일에 온전하게 미칠 때, 자신을 모조리 내어 바칠 때에야 비로소 당당한 자리 매김을 하고 살아갈 수가 있으며, 마치 그것이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삶인 것처럼 인정하는 것이 그저 그렇게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주 솔직하게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자. 첫눈에 반하면서 전류가 흐르는 전설 같은 연애가 일생을 통 털어도 결코 쉽게 오지 않은 것처럼, 온전하게 다 미쳐버릴 수 있는 일과 특정분야를 못 만나고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 솔직한 삶의 모습이다. 왜, 인간이 '기능'적인 가치와 '생산'적인 수치에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때로는 좀 심심하게 미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살아있는 인생일텐데... -딴 이야기가 또 길어졌다. ^^

체코 출신이면서 NFBC의 대표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포야르는 흡연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애니메이션 'Mouseology'를 통해서 독재적인 사회체제에 대한 냉소적인 풍자를 보여준다.

추추부코브 박사는 쥐 한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데, 그것은 밀폐된 공간 안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주는 것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조건에서 먹이를 먹는데 길들여진 쥐는 이제 그 시간만 되면 알아서 먹이를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일정한 시간에 반복된 일이 쥐의 머리 속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심어졌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의 머리 속에도 바로 이 쥐와 같은 프로그램이 들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깊은 고민에 잠길 때, 기분 전환을 원할 때, 외로울 때, 겉멋이 든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을 때, 그 때마다 머리 속에 쥐가 나와 종을 울려대는 프로그램이 작동한다는 것이 박사의 이론이다.

물론 애연가들은 다 지지하는 바이겠지만, 담배는 피로회복제의 구실과 소화제의 기능, 때로는 위로의 막중한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기호품이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다가 영화 속에서처럼, 쥐의 형상으로 변한다면 아찔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안하는 처방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우선 흡연프로그램, 중독프로그램을 미리 생기기 전에 없애야만 한다고 -어찌보면, 간편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정말 의미심장하게 덧붙이는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지배하는 쥐새끼의 종류는 담배 외에도 비만과 음주 등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흡연'문제를 통해서 인간의 자아와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공산권 국가의 작가답게 체제와 제도에 대한 지배적인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쥐로 변하는 직설적이고 유머와 객관적인 거리감을 상기시키기 위해 의도된 '그림 그리는 손'의 등장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가지, 보고 나서 자꾸 눈에 걸리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든지 아니든지 간에 영화 속의 'heavysmoker'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일관성이다.

· 원제 : Mouseology (파블로프의 쥐)

· 감독 : 브제티슬라프 포야르 (Bretislav Pojar)

· 제작년도 : 1994년
· 러닝타임 : 9분
· 출시 : 라바필름(02-765-8312)
'우리가 다시 그려요'에 수록

Joins 송유경 사이버리포터 <raba1895@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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