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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만으로 대선 유불리 따지기 힘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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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대 총선 개표가 진행된 11일 밤, 중앙일보 편집국에 정치학 전공 교수 세 명이 모였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번 총선 결과(이날 오후 11시 현재)에 대해 세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좌절감과 야권연대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폭넓게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서울을 중심으로 반이명박(MB) 바람이 강하게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선전하면서 “총선 결과만으로 대선 유불리를 따지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특별좌담은 중앙일보 이훈범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선거 결과에 대해 총평부터 해 달라.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부에 대한 불만이 서울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당이 당명까지 바꿔 가며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전국 유권자들의 기대를 만족시켰던 같다.

 ▶손혁상 경희대 교수=한국 정치사상 이념적 성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선거였다. 과거 선거에 비해 정당들이 보수·진보 등 이념적 표현을 강하게 사용했다. 야권연대의 경우 진보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이에 대해 반발했던 것 같다.

 ▶장훈 중앙대 교수=MB 심판론을 내세운 야권은 과거를 묻자고 하는 선거였다. 반면 새누리당은 당의 쇄신과 정책 변화를 통해 과거를 묻기보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서울에서는 MB 심판론이 우세했지만 나머지 거의 전 지역에서 과도하게 MB 심판론으로 기우는 걸 견제한 결과라고 본다.

 ▶사회=투표율이 18대 총선에 비해 8% 이상 높아졌다.

 ▶강=지난해 서울시장 보선 이후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자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을 뽑았더니 일부나마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는 걸 봤다. 정치가 세상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자각했다고 본다.

 ▶손=과거엔 투표에 대한 사전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선 선거 어젠다부터 후보 검증까지 한 번의 사이클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젊은 층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렇지만 보수의 결집이 이를 상쇄한 측면이 있다.

 ▶사회=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좌클릭’했다는 평가가 많다. 19대 국회에선 어떻게 될까.

 ▶장=야권연대가 내놓은 총선 공약은 진보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19대 국회에서도 이런 기조가 이어진다면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발동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민주통합당은 시험대에 섰다.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총선 당시 공약을 모두 실행으로 옮기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문제 등은 대선 과정에서 상당히 민감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일종의 대선 딜레마인데, 정치공학적으로는 통합진보당 도움이 필요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중도층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철수 교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나꼼수 등 선거 외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한 선거였다.

 ▶강=안철수 현상을 키운 것의 8할은 MB 정부다. 정부의 소통 부재에 허덕이는 젊은 층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이 나타난 거다. 어떻게 보면 MB가 우리 사회를 진보 쪽으로 몰고 간 측면도 있다.

 ▶장=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의 관계가 야권연대에 속하는 정당들과 외곽 진보세력의 관계에 비해 탄탄했던 것도 큰 변화다. 투표율을 끌어올린 투표 독려운동에서 진보진영의 멘토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과거보다 그 효과는 크게 떨어졌다.

 ▶손=SNS 흐름을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이 주도한 게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야권이 기존 정당 체제의 위축을 가져온 사이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사회=18대 국회는 폭력성으로는 최악이었다. 19대 때도 되풀이될까.

 ▶강=통합진보당이 제3당으로 거듭나게 됐으므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야 할 때다. 운동의 수준과 제도권에 들어와 있을 때의 모습이나 행동은 달라야 한다. 또 다시 최루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느낌을 주기 힘들 것이다.

 ▶장=1987년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87년 이전 법이나 규범이 제대로 없을 때 용인되던 것들이 87년 이후에는 용인이 안 된다. 일부 의원의 의식이 87년 이전 의식과 이후가 뒤섞여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손=정치권의 권위가 해체되면서 국회에서의 비정상적 행위에 대한 페널티가 전혀 없는 게 문제다.

 ▶사회=지역 구도에는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강=충청권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사라졌다. 따라서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이 쥐었던 캐스팅 보트의 실효성이 거의 소멸했다.

 ▶사회=이번 총선으로 대권 주자들의 득실은 어떻게 될까.

 ▶장=가장 큰 승리자는 박근혜 위원장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만큼이나 힘든 상황에서 실질적인 승리라 할 만한 결과를 냈다. 박 위원장이 당 쇄신 과정에 정책의 유연성을 보여 줬고 대통령과 큰 마찰 없이 당을 장악했다. 대선 가도에서 상당히 넓은 입지를 마련했다고 본다. 복잡한 건 야권이다. 새누리당은 단일 세력인 반면 야권은 연대를 해야 하는데 정책적 관점에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 또 문재인 후보가 중심이 된 부산에서 생각보다 큰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문 후보의 입지도 확고하지 못하다. 대선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이 복잡하게 전개될 것 같다. 반면 안철수 교수는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으로 대선 준비를 가시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강=박 위원장의 당내 입지가 확실히 강화될 것이다. 다만 서울 민심이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은 부분은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문재인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지만 가능성과 함께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줬다. 안철수 교수는 총선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기회는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본다.

 ▶손=서울에서 새누리당이 패한 것에 비춰 볼 때 야권에서 영남 후보가 나온다면 박근혜 위원장이 예상 밖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민주당의 경우 일단 문재인 후보가 선두 주자로 떠올랐지만 부산·경남으로 외연을 넓히면 김두관 후보도 또 하나의 카드로 등장할 수 있다.

 ▶사회=재외국민 투표가 처음 실시됐는데.

 ▶강=총선에는 참여율이 저조했는데, 대선 때는 다를 수 있다. 국내에 연고가 없는 재외 국민들이 지역구 의원 뽑는 데는 무관심할 수 있어도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다를 거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제도인 만큼 보완할 점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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