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치료약물 남용에 멍드는 미군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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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패트릭 버크 중위는 이라크에서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공군 기지까지 B1 폭격기를 조종해 19시간 동안 비행한 뒤 술집에서 동료와 회포를 풀다 발작을 일으켰다. "저놈들이 날 납치하려 한다"고 소리치더니 동료의 머리를 마구 때리는가 하면 지나던 자동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끌어내리고서 몰고 질주했다. 폭행 차량 절도 음주 운전 등으로 기소된 버크 중위는 그러나 군사 법정에서 '약물 중독과 음주 수면 부족에 따른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면했다.

버크 중위는 장거리 비행 때 4시간마다 한 알씩 각성제를 복용해 40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각성제는 군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것이었다.

버크 중위의 사례는 미군에 만연한 합법적인 처방 정신질환 약물 남용의 심각성을 대변한다고 8일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이 넘도록 전쟁을 계속하면서 미군 장병에게 처방되는 각종 정신질환 관련 약물은 급증했다. 육군 의무감실에 따르면 지난해 현역 육군 장병 11만명이 우울증치료제 수면제 진정제 정신질환치료제 불안증치료제 등 각종 정신질환 관련 약품을 처방받았다. 육군 장병의 8%가 진정제 처방을 받고 있고 6%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5년 이후 무려 8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 전에만 해도 미군은 정신질환 치료제 처방을 받는 병사를 전투 현장에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신과 군의관들이 정신질환 치료제를 처방해서 장병을 전장으로 보내고 있다고 미군 내 정신 질환에 대한 책을 쓴 정신과 의사 피터 브레긴이 비판했다.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제는 세레토닌 분비를 촉진하며 자살 충동을 일으키거나 폭력적으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여기에 잦은 이동과 전투 현장 배치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의관은 대개 180일분을 처방한다. 한꺼번에 많은 분량의 약을 손에 넣게 되는 장병들은 남용 가능성이 커지고 처방 없이 쓰이면 마약이나 다름없는 정신질환 치료제가 유출될 우려가 높아진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구금 중이던 탈레반 지휘관을 멋대로 사살한 데이비드 로렌스 일병은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한 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정상 참작을 받아 고작 10년 징역형에 처해졌다. 베트남 전쟁부터 장병들의 마약 복용으로 골머리를 앓아온 미군은 이제 정상적인 처방 의약품의 부작용이라는 새로운 과제까지 떠안았다.

신복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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