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미혼 여직원에 결혼 권유 했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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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여성 채용을 전체의 30%로 늘리고, 지역전문가의 여성 비중도 30%까지 확대하라”고 말했다. 10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42층 회장실 옆 회의실에서 지역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임직원 7명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다.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는 대리나 과장급 젊은 직원들을 해외로 1년간 보내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혀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사내 공모를 거쳐 한 해 200~300명 선발하며, 여성 비중은 20%가량이다. 대졸 신입 공채에서 여성 합격 비율은 27% 선이다. 이 회장은 “여성 인력도 해외업무에 적극 활용하고 글로벌 인재로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특수 언어를 익히려면 1년은 너무 짧으니 특수 언어 지역은 기간을 2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지역전문가 제도는 이건희 회장이 1990년 도입했다. 이후 20여 년간 80여 개국에 4400명의 지역전문가를 보냈다. 올해는 50개국에서 285명이 활동하고 있다. 90년대에는 선진국 중심으로 파견했고, 2000년대부터는 중남미·인도·중국·중동·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위주로 선발하고 있다. 이 회장은 “회장이 되자마자 추진한 것이 지역전문가와 탁아소 제도”라고 소개했다. 처음엔 반대도 심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당시 한 임원은 내 방에 뛰어들어와 ‘기업이 이런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하소연한 일도 있다”고 회고했다. 1인당 수억원, 전체로는 연간 수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이렇게 투자한 사람이 회사를 떠날 경우 손실이 막대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도입을 결정했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들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회사는 어떻게 될지, 사회는 어떻게 바뀔지, 거기에 맞춰서 나는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하면서 미래를 보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내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것은 그런 뜻이었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지역전문가 시절을 되돌아봤다. 99년 영국에 다녀온 삼성전자 김기선(43) 상무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것을 싫어하는 영국인의 특성을 알고 데리고 다니는 개한테 “예쁘다”고 말을 붙여 사람을 사귄 일화를 소개했다. 개를 칭찬하면 주인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김 상무는 “다른 문화권 소비자를 이해하는 감각을 키운 게 해외 마케팅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두 시간가량 이어진 오찬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 회장이 “여성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미혼인 직원에게 “그렇게 똑똑하고 열정이 많은데, 그 좋은 걸 2세, 3세에게 물려줘야 나라가 잘될 텐데…”라고 했다. 이 여직원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결혼을) 안 하는 거죠”라고 답했다. 이후 “왜 싫어요” “재미없어 보여요” “안 해보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하는 식으로 웃음 띤 옥신각신이 이어졌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편 삼성은 해외 사업장에 있는 현지 채용 인력이 한국 본사에 와 근무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제도도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해외 인력 11만 명 중 지난해에는 현지 직원 200명이 본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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