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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강변의 추모 인파 … 정작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제사보다 책을 더 읽어라” 권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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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봄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바람마저 적당히 살랑거려 강변 나들이에 그만이었다. 250년 전 이 땅에 오신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 조선 후기의 위대한 지성을 기리는 묘제(墓祭) 및 헌다(獻茶) 의례가 7일 열렸다. 행사장인 남양주시 조안면 실학박물관·다산묘역으로 달려갔다. 남한강·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마을. 제수(祭需)는 조촐했으나 정성만큼은 지극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예법에 따른 큰 제사에 익숙하지 못하다. 홀기(笏記)가 귀에 걸리기는 해도 속속 이해하진 못한다. 소퇴립(少退立)이 ‘약간 물러나 서 있는다’라는 것도, 흥(興)이 일어서라는 뜻인 것도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께 살짝 물어보고야 알았다. 어디서들 소식을 들었는지 500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묘소가 있는 좁은 둔덕에는 다 오르지도 못했다. 어린 자녀를 데려온 분들도 꽤 됐다. 귀양살이만 18년. 스스로 폐족(廢族)을 일컬으며 자식들에게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고 했던 다산이다. 정치적으로는 불우한 평생인데도 우리 국민 마음에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한 매력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집에 돌아와서도 제사의 여운이 남아 정약용 관련 책 몇 권을 빼 들었다. 그가 1808년 귀양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을 보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 읽어주고 내 책 한 구절이라도 베껴두는 일보다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04년 뒤 오늘 행사를 예견이라도 한 듯 “제사도 좋지만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일러주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일 투표가 실시되는 19대 총선거만 해도 여야 정당·후보들이 결과 여하에 따라 하늘이 두 쪽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지만 다산의 눈으로 보면 일상적인 정치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권력(자)의 임기가 끝나거나 바뀌는 데 대해 다산은 “권력은 교체되기 마련이다. 갈려도 놀라지 않고 잃어도 연연해 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공경하게 될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설파한다. 국민 입장에서 권력 교체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부하고 귀한 목민관은 벼슬을 차고 녹까지 받는다. 그 녹은 만민의 피와 땀을 한 사람이 받아 쓰는 것이다”라는 점을 새로 들어선 권력이 마음 깊이 깨닫는 일이다(『목민심서』).

 100년 못 채우는 삶을 마치 1000년이라도 살 것처럼 아등바등하면 자칫 꼴이 우스워진다. 대신 1000년 이어 내려온 지혜를 우리 짧은 삶에 수시로 비추어 보면 훨씬 긴 안목을 누릴 수 있다. 그 지혜의 높은 산등성이에 다산 선생이 살아계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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