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되는 줄 아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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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민주통합당 김용민(38·서울 노원갑) 국회의원 후보부터 ‘막말녀’, ‘진상남’까지.

 요즘 한국 사회가 ‘막말 전성시대’에 접어든 형국이다. 막말은 인터넷과 방송을 뛰어넘어 거리와 학교로, 특정 집단의 은어(隱語)에서 시민들의 일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 후보 막말 논란의 발단이 된 2004년 인터넷 방송 라디오21의 ‘김구라·한이의 +18’ 이후 방송계에선 막말을 하는 연예인이 주목을 받았다. 2006년 연예인 박명수(41)씨는 상대 진행자에게 “야, 야, 야”라고 윽박을 질러 호통 개그로 인기를 끌었다. 김구라(42)씨는 2008년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을 진행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프로그램 1회당 막말을 48.3건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영향 때문에 방송계에선 KBS ‘개그콘서트’의 ‘왕비호’,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등 막말 발언 캐릭터가 쏟아져 나왔다.

 막말은 거리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한 포털사이트에 길을 찾지 못하는 택시 운전사에게 20대 여성이 쉴 새 없이 욕을 퍼붓는 ‘택시 막말녀’ 동영상이 유포됐다. 이 여성은 50대 택시기사에게 “당신 XX이야? 대답해, 길도 모르는 게, XX”라는 폭언을 내뱉었다. 지난해에는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던 고교 남학생이 “자리를 양보하라”던 여대생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고교생은 여대생에게 “XX야 네가 뭔데 XX이야 꺼져”라고 한 뒤 아무일 없는 듯 게임을 해 ‘진상남’이라 불렸다.

 정치권도 막말 논란이 늘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 집구석이 하는 짓거리가 전부 이거다. 형도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하고 있다”는 발언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초박빙 접전을 앞둔 막판 선거전에선 막말이 더 판칠 기세다. 김 후보는 선거 홈페이지에 “우리나라 문제를 비판하고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터프한 표현을 썼다”고 적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막말을 일삼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막말을 부추기거나 묵인하는 건 일종의 사회병리 현상”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한심해 보이면서도 따라 하게 되는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 효과’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막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사회 주요 계층에서 막말을 주도적으로 쓰면서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고운 말을 쓰자’는 우리 사회의 규준(規準)을 막말이 대신해 버렸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막말 사회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다. 서강대 김영수(사회학) 교수는 “글자 수가 제한된 인터넷 댓글과 SNS에서는 표현이 직설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며 “말도 비슷한 형태로 바뀌면서 막말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려대 이내영(정치학) 교수는 “정치인들이 이름을 과시하기 위해 여과 없이 말을 뱉으면서 막말이 유행했다”며 “이번 총선에서 막말 정치인도 시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행동이 변화하는 것. 아이들은 격렬한 행동을 관찰한 경우 다른 친구들과 놀 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행동만 따라 하는 ‘모방학습’과 달리 내면적 심리까지 학습해 막말과 왕따 등 부정적인 것일수록 더욱 빠르게 학습된다.

김용민의 막말

“ 여자가 만약에 XX를 가지고 자해를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바늘로 꿰매는….” (‘김구라·한이의 +18’ 2005년 1월 방송)

“ 부인하고만 떡(부부생활)을 치라는 법은 없어··· 아버지랑 아들이 XX동서 되는 경우가 발생해.” (‘김구라·한이의 +18’ 2005년 2월 방송)

“ 한국 교회는 일종의 범죄 집단, 척결 대상으로 누가 정권을 잡아도 무너질 개신교다.” (2012년 1월 미국 한인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

“ 아버님이 걱정을 하셨습니다. ‘장래에 니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되는데… 너무 욕이 지나치다. XX이 뭐냐?’” (‘나는 꼼수다’ 2012년 1월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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