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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의 날 … 정현종 시인, 신문을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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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56회 신문의 날(4월 7일)을 이틀 앞둔 5일 오전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사옥 주차장에선 고 중앙일보 김태성 기자를 추모하는 노제(路祭)가 거행됐다. 하필이면 이날이었다. 정현종(73·사진) 시인과 ‘신문’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서른여섯의 한 영민한 기자를 떠나 보낸 날, 시인이 신문의 날을 맞아 본지에 기고한 ‘아침놀’이란 시를 받아 들었다.

 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아침놀이 매일/몸과 세상을 들어올리듯/신문은/마음과 나라와 인류사회의/아침놀이 되어/그것들을 항상 들어올려야 하리/…’ 아침놀 같던 한 신문 기자의 죽음 앞에 시인은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졌다고 들었는데…. 서른여섯, 참 아까운 젊은 기자 한 명을 잃었습니다. 기자들이 품고 있는 일종의 희생 정신을 저는 늘 존경해 왔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 시인은 신문 예찬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일평생 신문을 집어 드는 것으로 아침을 열고, 세안을 마친 뒤에는 신문을 꼼꼼히 정독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 그는 “언젠가 신문을 예찬하는 시를 쓰겠노라” 말하곤 했다. 그 다짐이 드디어 결실을 봤다. 그가 본지에 보내온 ‘아침놀’이란 시는 이 땅의 신문들에, 신문 기자들에게, 신문 애독자들에게 건네는 찬사이자 당부다. 이 시를 책상 위에 펼친 채 시인과 마주 앉았다.

●신문 읽기는 선생님의 오랜 습관인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부터 가져옵니다. 세수하고 나서 읽지요.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 것입니다. 태양은 매일 새롭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관련이 있지만, 신문의 역할과 관련시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하루하루가 새날이 되기 위해서는 신문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문을 ‘아침놀’에 비유한 것이지요. 아침 노을이 매일 세상을 들어올리는 것처럼 신문 역시 우리 사회를 매일매일 들어올리는 중요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어떻게 활용하시는 편인가요.

 “사람은 평생 무슨 말을 듣고 읽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책과 함께, 매일 읽는 신문이 중요한 이유가 그렇습니다. 신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처방을 읽습니다. 저는 주로 칼럼과 사설을 읽고 기획물이나 인터뷰 기사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자들이 전문적 시각과 지극한 마음을 가지고 쓴 글에 대해 감탄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특히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아주 구체적인 자료로 뒷받침하면서 전달하는 철저한 직업 의식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이른바 SNS 시대에 신문만의 기능이란 게 있을까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니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리고 이른바 대중영합이란 측면에서 TV 등 영상매체나, 휴대용 전자 매체들이 앞서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신문에는 다른 매체에는 없는 사고(思考)와 계몽의 기능이 있어요. 기자도 깊은 사고를 통해 기사를 작성하지만, 독자 역시 천천히 읽으면서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지요. 신문은 실생활에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정보뿐만 아니라 지식도 전해주고 성찰도 하는 기회를 줍니다. 말하자면 계몽적인 기능일 텐데, 그런 신문의 기능은 대중 영합적인 시대일수록 더욱더 중요해 보입니다.”

●점점 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안타까워요. 시에도 썼지만 독일 철학자 니체가 ‘세계는 오래전부터 정신병원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요즘 세상이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도 언어도 갈수록 경박해지고 천박해지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시대에 제 정신을 갖고 움직이려는 기관이 그나마 신문이라고 봅니다. 어른들이 젊은 세대에게 신문 읽는 습관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신문들이 정파적이란 비판도 있는데요.

 “신문이 정파적으로 흘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좌우의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이런 말을 했죠.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공동체(코스모스)가 있다. 반면에 잠들어 있는 자들은 각각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공동의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한 저널리스트는 깨어 있는 자들임에 분명합니다. 공정하고 폭넓은 시선으로 우리 공동체가 발전하길 바라는 간곡한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가 신문이어야 합니다. 신문의 날을 맞아 우리 신문들이 함께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침놀

신문의 날에 부쳐

정현종

아침놀이 매일

몸과 세상을 들어올리듯

신문은

마음과 나라와 인류사회의

아침놀이 되어

그것들을 항상 들어올려야 하리.

그래야 하리.

공동체의 안위와 앞날을 위하여,

각 분야의 창조적 약진을 위하여

낮밤 안 가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느니ㅡ

열심히 기록하고

기억하여

일의 맥락을 제대로 짚게 하고

판단과 평가에 빛을 더하려 하네.

그렇지 않으면 신문이 아니리.

우선 사실을 알리고,

옳은 것은 키우며, 그리고

그른 일은 바로잡는

양약이 되고자 하네.

개인의 무게를 잘 알면서

또한 더 큰 테두리를 생각하느니

 

<세계는 오래전부터 정신병원이었다>고

한 독일철학자는 말했지만,

저 제정신 아닌 행태들 속에서

그래도 한껏 ‘제정신’을 갖고 움직이려는

기관들이 있어

나라들과 인류사회의 피를

끊임없이 맑게 한다면 또한 얼마나 좋으냐.

 

신문들은

그런 기관이어야 하리.

우리 사는 데가 살 만한 곳이기를 바라

생각과 느낌이 지극한

간곡한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이어야 하리.

아침놀이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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