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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뼛가루까지 사랑하는 나무들에게 바치는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 10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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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계절은 봄이지만 날씨는 아직 봄이 아니다. 꽃샘추위가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평년보다 낮은 기온 탓에 개화(開花) 시기도 늦춰지고 있다. 4월 초순이면 대부분의 남부 지방에서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려야 하지만 올해는 3~6일 정도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바람에 꽃축제를 준비했던 지자체들이 울상이다. 예년의 개화 시기에 맞춰 일정을 잡았지만 아직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꽃 없는 꽃축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나리·진달래도 좋고, 매화와 벚꽃도 좋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꽃은 목련이다. 따사로운 봄볕 속에 하얗게 핀 목련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아련해진다. 지금쯤이면 기지개를 켜고 서서히 개화 준비를 할 때가 되었건만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목련은 여전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련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꼭 가볼 곳이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이다. 국제목련학회가 인정한 세계 최고의 수목원이다. 그곳에 가면 학명 앞에 ‘매그놀리아(Magnolia)’라는 명칭이 붙은 400여 종의 목련을 만날 수 있다. 3월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비온디 목련부터 초겨울에 꽃이 피는 태산목까지 사시장철 각양각색의 목련을 감상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이는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미국 출신의 고(故) 민병갈(본명 칼 페리스 밀러)씨다. 45년 광복 직후 24세의 미 해군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57년간 한국에 살면서 필생의 업으로 수목원을 가꿨다. “전생의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의 문화와 자연에 심취한 그는 70년 태안반도 천리포 일대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30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수목원을 일궈냈다. 천리포수목원이 보유한 수종은 1만1000종으로 국립수목원보다 5000종이 많다. 그는 약 1000억원의 사재를 쏟아부어 조성한 59만5044㎡(18만 평) 규모의 수목원을 재단에 기부하고 2002년 4월 8일 81세를 일기로 숨졌다.

 10주기가 되는 내일, 천리포수목원에서는 고인의 수목장이 거행된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매장돼 있던 유해를 화장해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분홍색 교배종 목련인 라스프베리 펀 나무 아래 안치하는 행사다. 마지막 남은 뼛가루까지 나무들에게 바치는 셈이다.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인간 민병갈이 한국에 남긴 발자취를 극진한 나무 사랑 중심으로 엮은 첫 평전이 나왔다. 생전의 고인과 교분을 맺었던 전직 언론인 임준수씨가 펴낸 『나무야 미안해』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1000억원대에 달하는 임야 661만1600㎡(200만 평)을 국가에 기부한 80대 독림가(篤林家) 손창근 옹(翁)의 미담과 더불어 10주기를 맞은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뜻 깊은 선물이 될 듯하다. 4월이 가기 전에 목련을 보러 천리포에 가야겠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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