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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 지자체, 지방소비세 늘려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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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위기에 몰린 가운데 지방소비세 확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는 “부가가치세 중 지자체에 배분하는 지방소비세의 비율을 현행 5%에서 2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는 “국가재정 여건을 감안해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지방자치 패러다임 전환 위해 필요하다

김찬동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의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의 패러다임에서 설계됐다. 단체자치의 패러다임은 주민자치의 패러다임을 경시하는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 특히 중앙집권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곳에선 지방자치가 형식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복지가 강조되면서 중앙집권이 강화돼 지방자치 자체를 약화시킬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라는 형태는 갖추고 있으나 중앙집권 현상과 지방의 중앙정부 의존 현상이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단체자치의 전통이 강한 국가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민자치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20년 정도 지난 1970년대 주민자치 논의가 활발했다. 프랑스도 82년 지방분권법을 도입해 헌법 차원에서 분권적 제도를 다양하게 실현했다. 중앙정부가 임명하던 100명의 데파르망(행정구역) 지사를 데파르망 의회의 의장이 담당하도록 주민자치적 요소를 강화했다.

 주민자치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자치헌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주민자치의 패러다임을 강화했다. 이를 ‘딜론의 원칙’ 또는 ‘홈룰(Home-rule)’이라 부른다. 덕분에 지방정부가 스스로 법률을 정한다. 지방정부의 구성과 조세권, 자치행정권, 입법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40개 주 이상에서 보편적이다.

 한국의 지방자치 20년을 정리해 보면 단체자치의 전통 속에 머물러선 더 이상 지방자치는 진전될 수 없게 돼 있다. 오히려 중앙정부 의존이 더욱 심해져 지방자치 자체가 질식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방 재정자립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자치 2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 이전보다도 더욱 떨어졌다. 92년 69.9%이던 것이 지난해 51.9%로 낮아졌다. 반면에 복지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보조금 의존도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국고 보조금의 증가가 민선 1기에 8.5%였던 것이 현재는 21.7%나 된다.

 사무 이양도 지방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국가사무 4만3000건 중에서 지난 10년간 이양이 결정된 것은 2500건 정도다. 그러나 사무만 이양되고 재원 이양이나 법령 개정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지방정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만 늘고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무 이양과 함께 재정·인력 이양과 조직 이관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사무 이양 자체가 무의미하다. 현재의 지방자치 패러다임을 그대로 둬서는 지방자치와 재정이 질식할 수 있다. 특히 복지 사무와 복지 재정의 급증은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재원과 영역을 급속히 감소시킬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첫째,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특별법으로 만들어 여기서 지방정부의 사무와 세원에 대한 기본 역할의 원칙이 정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다양한 개별법으로 지방자치법의 원칙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규정을 통제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방식의 지방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지방정부의 구성이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와 인구 규모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주민자치를 실질적으로 부활시키기 위해 주민에게 권한과 재원을 부여해야 한다.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역할 분담을 수평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서울시가 주장한 지방소비세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찬동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지방소비세 확대 신중하게 검토해야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0년 부가가치세 수입의 5%를 재원으로 해 도입한 지방소비세를 더 확대하는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지방의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으로 징수해 사용하는 지방세의 비중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방소비세 확대를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지방소비세 도입 확대를 결정하기 전에 그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방소비세가 자주재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방자치제 하에서는 지방정부가 자체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직접 주민들로부터 징수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재원을 자주재원이라고 하는데 지방소비세는 이름은 지방세지만 자주재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부가가치세는 전국에 동일한 세목이 적용되는 세목으로서 국가에서 정책을 결정하며 행정도 국가에서 담당해 정책 결정과 세금의 징수에서 지방이 하는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점검해 봐야 한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돼 지방의 소비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세수입이 증대된다면 증가한 세수입의 일부분을 세수입이 발생한 지역에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지방소비세를 도입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의 지역경제 활성화 노력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도록 제도가 고안됐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성과가 나타났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소비세는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민간소비지출에 수도권·광역시·도로를 구분해 설정된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수치를 기준으로 지역별 배분비율을 정한다. 그런데 민간소비지출은 소비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통계가 집계되므로 지역별 소비액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며 지역의 소비 증가가 지방소비세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서울 사람이 강원도에서 소비한 금액은 서울의 민간소비지출에 포함될 뿐 강원도의 민간소비지출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지역별 가중치(수도권 100%, 수도권 외의 광역시 200%, 수도권 외의 도 300%)는 그나마 민간소비지출에 비례한 재원 배분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지방소비세를 다른 지역보다 많이 배분받으면 재정상태가 개선돼 국가가 지방에 지원하는 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과 같은 이전 재원을 덜 받게 된다. 이런 효과들을 모두 종합해 궁극적으로 소비가 더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재원이 돌아가는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국가와 지방 간 재정재원 배분 비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능 이전에 따른 재원 이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면 지방소비세로 인해 국가와 지방 간 재정재원 배분 비율이 변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재원의 60% 이상을 이미 지방이 사용하고 있으며, 국가 재정 여건도 양호한 편이 아니다.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고령화·복지제도 확충에 따른 재정수요 증대 등 최근의 경제환경을 보면 앞으로 국가 재정 압박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소비세를 확대해 국가재원을 지방으로 일방적으로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방소비세를 확대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해 지방교부세나 다른 이전 재원을 축소해 국가와 지방 간 재원배분 비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안종석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