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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여교사에게 “왜 시비야, 맞짱 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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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3학년 담임 교사가 후배 돈을 빼앗은 학생을 혼냈다가 오히려 담임을 그만뒀다. 문제 학생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킨 걸 두고 학부모가 학생인권조례를 위반했다며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학교에서는 말다툼하던 남학생들을 말리던 여교사가 학생들로부터 “XX년아, 왜 시비야. 맞짱 뜨자”는 욕설을 들었다.

 3월에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된 뒤 한 달 동안 한국교총에 접수된 주요 교권 침해 사례들이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5일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권 침해를 호소하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하루에 10~20건가량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화는 대부분 교사가 문제 학생을 생활지도하려고 해도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워 학생이나 학부모가 항의하기 일쑤여서 교실이 통제 불능에 놓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 2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인권조례 시행 이후 학교 현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해 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곽 교육감은 당시 서울시교육청 직원 조회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대한)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과 선생님 간에 소모전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곽 교육감의 발언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교 교사는 “교육감이 학교 현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느 교사가 반대되는 보고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 제기를 해봤자 ‘교사가 먼저 인권조례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만 듣게 될까 봐 학생의 욕설 정도는 이제 문제도 안 삼고 그냥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 생활지도부장은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생 지도에 손을 놓고 있다”며 “인권조례를 들먹이며 대드는 학생을 제어할 수단도 없고, 피해 사례가 알려져서 괜히 망신만 살까 봐 두렵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총이 발표한 교권 침해 사례를 검토 중”이라며 “교권 침해 대응 매뉴얼을 발간할 때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윤석만·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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