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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장로들, 교회 아닌 식당서 노골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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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라남도 선관위 특별기동조사팀원들이 나주 영산포 풍물시장 4·11 총선 유세현장에서 태블릿PC·캠코더·펜 모양으로 생긴 보이스 리코더 등을 이용해 선거법 위반행위를 감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중앙일보 탐사팀이 선거관리위원회 특별기동조사팀(특기팀)과 4·11 총선 불법·탈법 선거운동 현장을 동행했다. 지난달 21일부터 열흘간 각각 여당과 야당의 ‘텃밭’인 경북과 전남의 곳곳을 누볐다. 특기팀은 최근 들어 은밀히 이뤄지는 중대선거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2월 만들어진 조직이다. 선관위가 2일까지 집계한 전체 선거법 위반행위는 총 1101건으로 18대(1229건) 같은 기간보다 소폭 줄었다. 하지만 고발·수사의뢰가 차지하는 비중은 18대 총선 15.4%에서 이번 총선 22.7%로 증가했다. 포상금 한도가 기존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오르고, 특기팀이 가동된 덕분으로 분석된다.

딱 걸린 경북 포항 불법 운동

“제가 ○○장로회 수석부회장입니다. 우리 지역에 총선도 있고, (국회의원 후보인) ○○○ 장로가 ○○교회 장로입니다. 우리 장로들이 가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꼭 부탁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 장로 기도 좀 해주십사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연말에 그만두시고 ○○○께서도 정계 은퇴를 선언하셔서 저 하나 남았습니다. 우리 지역에 현재 추진하는 엄청난 국책사업들은 제가 ○○○○위원장 때 손을 댄 사업이기 때문에 손댄 사람이 마무리하는 게 좋습니다. 마무리할 수 있도록…기도 한 번 해주십시오.” (녹취록)

  지난달 21일 포항시 북구 선관위에 이 지역 목사·장로들이 줄줄이 불려왔다. 경북선관위 특기팀의 임의동행 요구로 방문한 이들은 선관위 2층 사무실 3개의 방에 분리돼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달 15일 이 지역 한 식당에서 점심 모임을 하면서 A후보의 지지발언을 했다. A후보도 그 자리에서 이들에게 지지를 부탁했다.

선관위 특별기동조사팀이 사용하는 단속장비 중 하나인 야간투시경.

 특기팀은 당시 대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입수했다. 3일간 이어진 조사에서 목사와 장로들은 처음에 모르쇠로 일관하다 녹취록을 들이밀자 사실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C목사는 “그 양반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안 나갔다. 선처를 바란다”고 말했다. J목사는 조사가 두 시간을 넘어서자 돌아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는“이용당하는 나 같은 사람이 바보지. 이번엔 참…그렇게 됐네요. 비싼 밥 먹었다고 생각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A후보의 D상고 선배로, 모임을 주도하고 점심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고발된 H장로는 오전 3시까지 이어진 조사에서 초지일관했다. 그는 “교단 행사를 위한 모임이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도중에 우연히 들른 A후보가 합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H장로는 A후보가 오기 전인 식사모임 시작부터 “A후보가 고교 후배다.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려면 다선 의원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선관위는 지난달 30일 공직선거법의 제3자 기부행위제한 조항을 들어 H장로를 고발하고, A후보와 S목사에 대해 검찰에 수사자료를 통보했다. H장로가 기소될 경우 식사에 참여한 목사와 장로 17명 모두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식사자리에 부인과 함께 참석한 일부 목사의 경우 음식값의 최대 80배(약 140만원)를 과태료로 내야 한다.

 A후보는 지난달 16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기 때문에, 그 전날 있었던 식사모임의 지지 부탁 발언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기간 전에 선거운동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A후보는 “그날 모임은 현역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할 수 있는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활동이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엔 특기팀이 구미시로 향했다. 보좌관 임금을 후원금으로 변칙 사용한 혐의가 있는 무소속 김성조 의원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김 의원은 27일 검찰에 고발됐고, 다음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북 선관위 황만길 특기팀장은 “과거에 비해 대놓고 금품을 제공하는 노골적 행위는 줄었지만 은밀한 거래는 아직도 비일비재하다”면서도 “이젠 이런 은밀한 거래도 선관위 단속망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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