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큰손들 경매로 주택 사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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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사는 앨런 흐라딕은 요즘 하루 20곳 이상 빈집을 돈다. 집집마다 부서진 부엌 수납장이며 사라진 지붕 타일을 꼼꼼히 체크한다. 너덜너덜해진 거실 카펫과 구멍난 침실 벽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견적도 뽑아 아이패드로 본사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한다. 그가 매일 보러 다니는 집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압류된 것들이다. 그가 일하는 ‘웨이포인트’라는 회사에선 흐라딕이 입력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매에 나온 집을 얼마에 입찰할 것인지 정한다.

 웨이포인트는 2008년 이후 이런 식으로 1200여 채의 경매 주택을 사들였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자신이 붙은 웨이포인트는 올해 안에 1만~1만5000채를 더 사들일 예정이다. 웨이포인트의 사업성을 보고 돈을 대겠다는 사모투자펀드(PEF)도 줄을 섰다. 연초 웨이포인트는 실리콘밸리의 PEF인 GI파트너스와 4억 달러 투자계약을 맺었다. 그 외에도 콜로니캐피털, GTIS파트너스, 오크트리캐피털 등 PEF가 앞다퉈 경매 주택 매입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과거 압류주택 매입은 주로 개인이나 소액투자자의 몫이었다. 압류된 지 오래된 집은 손볼 곳이 많은 데다 적당한 가격 책정도 쉽지 않아 대량으로 사들여 관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가격이 최고가 대비 30% 이상곤두박질한 데다 금리가 바닥을 기자 경매 주택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부상했다. 흐라딕처럼 압류 주택 감정 전문가도 늘었다. 여기다 아이패드와 무선인터넷은 수십㎞ 떨어진 본사에 앉아서도 압류 주택의 상태나 보수에 필요한 견적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해줬다. 그 덕에 한꺼번에 수천 채씩 압류 주택을 사들이는 ‘큰손’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압류 주택 처분에 나서고 있다. 국유화된 주택담보대출 전문회사 프레디맥과 페니매이는 지난 2월 애틀랜타·시카고·로스앤젤레스(LA) 등 8개 대도시 지역의 압류주택 2500채를 시범적으로 처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역시 압류된 주택에 사는 원주인이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시장성은 충분하다는 게 웨이포인트의 계산이다. 더욱이 집값 급락을 부채질한 악성 압류 주택 매물이 소화되고 나면 집값도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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