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자구안…채권단·시장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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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은 껐지만 아직 불씨는 살아 있다. '

20일 발표된 현대건설의 자구계획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직접 자구안을 발표한 것이나, 막판까지 자구안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이번 자구계획은 연말까지 채권단이 자금회수에 나서지 않을 정도의 약효가 있을 뿐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무엇보다 현대건설이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차환발행할 수 있을 만큼 신용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중환자실' 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평이다.

◇ 급한 불은 껐다=외환은행 김경림 행장은 현대건설의 자구안 발표 직후 "이번 자구안은 서산토지 매각 등을 포함한 그룹차원의 획기적인 조치며 정몽헌 회장이 책임경영 의지를 표명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며 "12월 하순께 채권단협의회를 열어 만기연장된 채권의 상환방법과 추가 만기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 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최종 평가는 시장이 내리겠지만 일단 현대측이 성의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고 했다.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는 일단 합격 통보를 받은 셈이다.

이로써 현대건설은 일단 연말까지 채권단으로부터 기존 회사채.기업어음(CP)의 만기를 연장받아 부도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부채도 연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것은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자금 지원에 대해선 정부나 채권단 모두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현대건설이 자구계획을 얼마나 실천하는지 두고본 다음 결정할 문제라는 얘기다.

◇ 시장 반응은 덤덤=20일 현대 계열사 주가는 등락이 엇갈렸다. 현대건설과 상선 주가는 소폭이나마 올랐지만 현대전자는 떨어졌고 중공업과 자동차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평소 주가 움직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엥도수에즈 W.I.카 증권 김기태 이사는 "큰 줄기가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당장 시장의 반응은 크지 않을 것" 이라며 "다만 해외 시각은 문제를 덮어놓은 것일 뿐 중장기적으로는 현대건설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설명했다.

삼성증권 김기현 연구위원도 "일단 올해는 여신회수 자제 등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내년에 현대건설의 현금흐름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이번 자구안은 단기적인 호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 내년 상반기가 고비=현대건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갈 수 있느냐 여부는 내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돌아올 회사채 만기와 납품대금 결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 만기도래 회사채 1조9천5백억원 가운데 8천3백억원이 상반기에 몰려 있는 데다 건설회사의 특성상 연초에 자금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이 이번 자구안에 그치지 말고 추가 부채축소 계획을 잇따라 세워 빚을 빨리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석 CSFB 서울지점 이사는 "현대건설은 5조원대의 부채규모를 3조원대로 줄여야 생존이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더욱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신용등급을 올해 자구계획 실천으로 투자등급으로 올리더라도 현대건설 회사채가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되기 위해선 최소한 4~5개월이 필요한 만큼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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