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이 서울대 합격…'일반고 동거'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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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서대문구 한성고에서 중앙여고 3학년 학생이 논술 지도를 받고 있다. 한성고·인창고·중앙여고는 2010년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수학·논술 등 심화교육을 해왔다. [최승식 기자]

올해 서울대 기계항공학부에 진학한 공두현(19)군은 고교 3년간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 수능 직후 면접 대비 학원에 한 달 다녔을 뿐이다. 대신 그는 매주 토요일 학교에 갔다. 모교인 서울 한성고와 인근 중앙여고·인창고가 함께 하는 공동수업을 받았다. 공군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원 다니기가 어려웠지만 학교들의 질 높은 수업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신상철(19)군은 성균관대를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입학했다. 언론인을 꿈꾸는 그는 자기소개서에 ‘지식 방송국’을 적었다. 또래 8명과 함께 동영상을 만든 경험이었다. 모교인 세종고와 15개 학교의 연합 동아리 활동이었다. 신군은 “남들은 ‘스펙’을 쌓으려 사교육업체 도움도 받지만 학교에서 해결했다”고 밝혔다.

 일반고의 ‘동거 실험’이 활발하다. 인근 학교와 힘을 합쳐 공동수업을 제공하거나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확한 입시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경험을 나누는 학교도 등장했다. 사교육·특목고가 득세하는 입시에서 공교육의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북아현동 한성고 교실엔 한성고·중앙여고·인창고의 3학년 23명이 모였다. 각 학교에서 선발된 이들은 최양진(한성고) 교사로부터 논술 수업을 받았다. 지난해 고려대 전형에서 출제된 지문을 놓고 ‘자유와 간섭’이라는 주제로 토론했다. 2010년부터 세 학교는 매주 토요일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80명을 대상으로 8개 반 수업을 진행한다. 각 학교 ‘실력파’ 교사들이 정규 수업보다 심화된 내용을 가르친다. 인문계 3학년 논술을 맡은 최 교사는 EBS·강남구청 인터넷방송의 강사다. 그는 “우수 학생이 모이니 서로 경쟁도 하고 격려도 한다”고 전했다.

 서대문구청의 수업료 지원 덕에 학생 부담은 월 3만원에 불과하다. 자연스레 사교육이 감소했다. 참가 학생 54명을 설문한 결과 절반(50.9%)이 “학원 수업을 줄였다”고 답했다.

 세 학교의 올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포스텍 합격자는 72명, 공동수업 전(2010학년도)보다 10여 명 늘었다. 원승호 인창고 교감은 “학생에겐 실력 향상, 학부모에겐 교육비 절감을 가져와 호응이 좋다. 소문이 나니 다른 학교도 ‘배우겠다’고 온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고 등 6개 학교는 두 달에 한 번 진학교사 모임을 연다. 각 학교의 경험을 공유해 학교·전공별로 지원 가능한 내신·수능점수를 분석한다. 지난 입시엔 사설업체의 배치표를 학교에 맞게 수정, 제공했다.

 서울 수서동의 세종고는 인근 15개 학교와 함께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교들은 학기 중엔 연합 동아리, 방학 중엔 단기 아카데미를 통해 리더십·다문화·독서·스마트미디어 등 활동을 장려한다.

 천인성·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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