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 『식량전쟁』 쓴 40년 식품연구 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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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0년간 식품만 연구하던 원로 식품학자가 뜬금없이 소설을 썼다.

 2010년 정년퇴임한 이철호(67·고려대 명예교수·사진) 박사는 최근 자신의 첫 소설 『식량전쟁』을 펴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지켜보면서 멀지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이 광우병과는 차원이 다른 식량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예견하면서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고 했다.

 2010년 4월 한국식량안보재단 설립을 주도한 것도 식량위기라는 ‘소리 없는 쓰나미’가 밀려올 것을 예상해서다. 그는 “식량은 세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지배권력”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9일 만난 이 박사는 “소설 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며 “4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 추위에 잘 견디는 작물의 개발에서 소설이 시작되던데.

 “아직 전 세계적으로 이렇다 할 내한성(耐寒性) 작물이 없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내한성 작물이 개발되면 시베리아 황무지가 비옥한 밀밭으로 바뀔 수 있으며 이는 미국 농업에 엄청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가상해 봤다.”

 - 소설엔 2030년에 미국과 중국이 식량문제로 핵전쟁을 벌인다는 픽션도 들어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후 변화 협약에 중국이 가입을 거부하자 미국 정부가 대중(對中) 식량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을 사건의 모티브로 삼았다. 여기서 비롯된 양강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된다는 스토리다.”

 이 박사는 소설에서 2030년 ‘식량 전쟁’을 끝내는 ‘가상의 영웅’으로 김일성대학 출신의 생명공학자를 내세웠다. 그의 소설에선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므로 과학자의 국적은 한국이다. 또 유전자변형(GMO) 대신 유전자 증폭기술을 이용해 영하 20도에서도 녹색을 잃지 않는 작물을 개발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실제로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 이유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사막화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중국·인도는 ‘식량의 블랙홀’이다. 중국인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국제 육류 값이 크게 올랐다. 옥수수 등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이 증가하고 국제 투기자본이 곡물시장을 교란하는 것도 식량위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 우리도 식량위기에 둔감하지 않나.

 “우리나라 곡물(식용+사료용) 자급률은 26.7%(2009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쌀 자급률이 높다고 소비자·정부·미디어 모두가 식량위기에 등을 돌린다. ‘부족하면 사다 먹지’ 라는 안이한 생각이 팽배해 있다.”

 - 일본도 곡물 자급률이 28%로 우리와 비슷한데.

 “일본은 자급률을 50%로 높인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식량자급률 향상 추진위원회도 설치했다. 유휴지·농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아침 식사하기 운동을 통해 (일본산) 쌀 소비를 촉진한다. 건강을 내세워 지방 섭취를 줄이는 캠페인도 함께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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