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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고전 읽기 지도법

중앙일보

입력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또한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악공은 악기를 탓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주인이 된 자에게 있는 것이지 그 대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니 도련님도 자신을 탓하지도, 남을 탓하지도 마십시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한 TV드라마에서 등장인물 허연우가 형을 생각하는 왕세자 이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인용한 논어의 구절이다. 고전(古典)은 성인들의 지혜와 철학을 담은 글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치를 이야기에 담고 있다. 유대인이 조상들의 지혜를 후세에게 가르치는 방법으로 율법서인 탈무드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 고전은 한 구절 한 구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다양하고 풍부해 아이들의 사고력과 응용력을 키우는데 활용할 수 있다.

가족이 함께 고전 읽고 연극하면 흥미 커져

 고전 읽기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초보자인 자녀에게 고전 전집을 안기는 건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한우리독서문화정보개발원 오서경 연구실장은 “가족이 각자의 독서습관에 맞춰 언제까지 얼마만큼 읽는다는 식으로 목표를 세우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이 함께 서점에 가서 아이가 읽고 싶은 국내외 고전을 가리지 말고 스스로 책을 고르도록 할 것”을 조언했다. 오 연구실장은 고전 읽기를 시작하는 적절한 나이로 초등학교 고학년을 꼽았다. 저학년 때는 명작 동화를 읽어 독서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을 추천했다.

 고전 읽기를 시작할 때는 자기 또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고전을 선택하면 흥미를 높일 수 있다. 남학생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여학생은 ‘제인에어’를 읽고 공감하는 식이다. 고전을 고를 땐 축약본은 피한다. 오실장은 “축약본을 읽으면 줄거리 위주로만 읽기 돼, 고전을 읽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고전에 등장하는 좋은 구절을 음미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고전 작품들 중 한 두 편이라도 전체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고전은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은 뒤에 가족이 함께 연극을 해보는 것도 고전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한 방법이다. 희곡 ‘리어왕’을 읽은 뒤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해보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면서 동시에 가족간의 관계도 다질 수 있다. 오 연구실장은 “최근 독서 논술학원가엔 고전 읽기에 대한 학부모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고전 교육을 두고 ‘왕세자 교육’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왕실에서 왕을 가르치던 교육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오 실장은 “창작동화로 향했던 엄마들의 관심이 고전 읽기로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해심·생활태도 바뀌고 국어·역사 학습 도움

 고전의 구절은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전교생이 고전읽기를 하는 서울 동산초 한경미 교사(사진)는 “아이들이 고전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실생활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톨스토이 단편선 중) 동산초의 한 어린이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해 노트에 적었다. ‘이 글귀는 ‘자만심을 갖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지라는 뜻 같다. 내 주변의 두 친구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친구 사이인 A와 B는 경쟁적으로 휴대전화를 샀다. A가 터치형 휴대전화를 먼저샀다. 얼마 후 B가 스마트폰을 샀다. 그러자 A는 휴대전화 약정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최신형 스마트폰을 샀다. 결국 위약금을 물게 됐다.’ 한 교사는 “이렇게 읽은 고전을 실생활에 빗대어 말해보면 그 뜻이 쉽게 이해되고, 오래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은 생활태도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동산초 6학년 한서현양은 “고전을 읽고 예전엔 몰랐던 것을 깨닫고, 친구에 대한 이해심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고전을 읽기 시작한 뒤부터 동산초에는 욕설과 다툼이 줄어들었다. 한양은 “논어를 읽은 뒤부터 욕도 안하고 화도 잘 안 내고 친구들하고도 더 친해졌다”고 돌아봤다. 장승연양은 “부모님과 함께 고전을 읽고 난 뒤에 가정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사자소학을 읽은 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거나, 논어를 읽은 뒤 실생활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소학을 배운 뒤 부모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공자’를 읽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드는 친구에게 ‘공자 왈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에 네라고 순종하라’고 했거늘’이라고 말해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전 읽기 효과는 국어 교과서 지문을 읽는 독해 실력을 높여줬다. 지난해 사립초 공동학력평가에서 동산초 6학년의 국어과목 평균이 95점을 기록했다.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 어휘력도 풍부해졌다. 고전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시대를 자연스럽게 알게 돼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도 된다.

 한 교사는 “사회교과 수업을 지도하기가 전보다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돈키호테를 읽은 뒤 유럽의 중세시대에 대해 가르치면 이해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고전을 읽은 뒤 체험 활동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백범일지’를 읽고 백범기념관에 가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읽고 연극을 해보는 식이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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