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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주변인’ 장점 가진 북한 이탈주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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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역에서 어울려 활동하다 보니 축사나 강의요청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되도록 빼는 형편인데 ‘알겠습니다’ 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벌써 10번 가까이 그곳에 간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 대상 사회적응교육이 그것으로, 우리지역에서의 사회적응 어려움 해소, 지역적응력 향상,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진행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조기정착을 위해 통일부로부터 지정받은 각 센터는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적응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두 번이면 될 것 같았는데, 충남서북부센터를 찾은 지 벌써 2년째다. 대상은 보통 가족 단위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인 하나원에서 함께 우리지역으로 온 주민들이다. 북한에서 직접 남한으로 왔거나 중국을 경유해 온 경우가 많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온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이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해 대면하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적응돼 편안하고, 교육방법도 일방적인 것에서 쌍방 토의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져 있다. 처음엔 그분들이 남한에 오기까지

일러스트=박소정

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잘 꺼내놓지 않았다. 또한 억지로 말을 시켜도 어색해하며 피하기 바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이질감에서 오는 그 불편함을 어떻게 다 떨쳐낼 수 있을까 싶어 일방적인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꺼내놓는지, 그리고 동의를 얻는 방법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장애를 갖고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 속에 작은 흔적이나마 꿈을 꾸고, 그것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내 삶에 둥지를 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했던 주변인으로 살았던 삶의 조각들을 풀어 놓는다. 그러다 보면 누가 적응이라는 말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 피식 웃을 때가 있다. 사람이 적응하거나 익숙해진다는 건 우리가 주위 환경에 맞게 변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환경조건에 수동적으로 대응해 나가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부딪쳐 바꿔가야 한다.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꿈을 꿔야 하고 그 꿈을 위해 어떤 달음박질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꿈들이 자신에게 익숙해지도록 반응하자고 합의한다.

 서로 다른 사회나 집단에 속해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은 사람을 주변인이라 한다. 그런데 이 주변인은 주류사회인이 갖지 못하는 특유의 장점을 갖고 있다. 주변인은 주류사회의 허구성을 보며 갈등과 비판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학자 ‘파크’는 주변인은 주류사회인보다 더 넓은 사고와 더 예리한 지성보다 더 객관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인은 주류사회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깨어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주변인은 주류사회의 허구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건설하는 창조적 동력이 된다. 북한이탈주민…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에서 가장 약자요, 주변인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복지현장의 사람들과 그 당사자들은 더더욱 함께 하는 의식으로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 필요하지 않을까.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일러스트=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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