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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꿰뚫는 삶의 통찰력 김수현의 '은사시나무'

중앙일보

입력

14일 방영된 SBS 특집극〈은사시나무〉는 근래 보기드문 수작이었다. "역시 김수현이군!" 하는 시청자들의 감탄과 함께 드라마란 장르가 '작가 예술' 임을 재확인케 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등장인물의 생동감이다. 아내를 잃은 지 5년된 소도시 우체국장 출신의 아버지 (이순재) , 은행지점장에서 명예퇴직한 큰 아들 (한진희) , 이혼한 큰 딸 (양희경) , 술집을 운영하는 둘째 아들 (이덕화) , 바람난 아내를 모른 척하는 외과의사 막내 아들 (유동근) 등 모든 캐릭터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양념 캐릭터도 없고, 주인공을 둘러싼 들러리도 없다. 모두가 불쌍하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3부작이란 시간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마다 설득력이 놀랍다.

등장인물간 관계 설정도 식상하지 않다.〈은사시나무〉에는 조연도 없고 주연도 없다. 모든 인물이 자신이 서 있는 상황에서 대사를 던지고 받으며 고향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와 누구의 대화냐에 따라 갈등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런 갈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드라마의 깊이를 더했다. 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극적 긴장감은 작가 김씨의 저력을 실감케했다.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은 고향집의 방과 마루, 간간이 등장하는 마당이 주무대였다. 이렇게 한정된 공간에서도 상황과 등장인물에 따라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극적 긴장감은 전적으로 대본의 힘이었다.

그리고 시청자의 공감대를 넓힌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빼놓을 수 없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어가는 관계 설정은 무척 사실적이다.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 뻔한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깊은 내면을 끌어올리는 작가의 '내공' 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장례식을 소재로 가족 이야기를 풀어갔던 일본영화〈장례식〉(이타미 주조 감독작) 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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