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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2012 바다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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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여수EXPO역에 내리니 키 큰 두 개의 원통형 건물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름하여 ‘스카이타워’다. 원래 시멘트를 저장하던 사일로를 하나는 파이프오르간으로, 다른 하나는 담수화 시설로 바꾼 건물이다. 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은 아직 조율 중이라 불협화음을 내는데, 그 음색은 뱃고동 소리를 닮았다. 5월 12일 개막하는 여수세계박람회가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슬로건으로 한 해양 주제 행사여서 일부러 뱃고동 소리로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 월요일, 여수EXPO 준비상황이 보고 싶어 여수에 갔었다.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이어지는 EXPO장은 이미 외관 공사가 끝났고, 마지막 조성 공사 중이었다. 얼마 전 EXPO장 국제관에서 작은 화재가 났던 것을 걱정했더니, 오히려 현지 관계자들은 “화재 덕분에 관심을 받았다”며 좋아했다. 핵안보정상회의·총선 등 굵직한 현안에 가려 EXPO는 그만큼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리 있다. 그런데 여수EXPO, 그렇게 만만하게 취급할 행사는 아니다. 개인적으론 2008년 모로코와 접전 끝에 여수가 EXPO개최권을 따냈을 때부터 꽤 오래 기다렸던 행사다. 이유는 박람회의 주제인 ‘바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로 바다를 잘 개척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누구나 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으로부터 한 번 이상은 들어봤던 얘기일 거다. 바다를 모르는 도시 소녀는 이런 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도 감도 잡지 못했다. 그런데 바닷가 소년은 이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바다를 개척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는 수산대학으로 진학하고,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원양어선을 타고 먼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정말 바다를 개척해 대기업을 일궜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이야기다. 김 회장은 말했다. 바다를 보면서 그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늘 되새겼다고. 바다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같은 선생님 말씀의 ‘약발’이 이렇게 달랐다.

 미리 가본 여수EXPO는 50여 년 전과는 또 다른 바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과 파도를 이용한 에너지 생산 방법, 바다 밑의 풍부한 자원들을 탐색하는 각종 기술, 기후변화 시대에 환경과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는 방법, 각종 해양로봇 기술 등 과학기술이 결합한 바다 이야기가 있다. 해양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 방안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장도 마련된다. 또 25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을 가진 남해안 자체가 관광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수EXPO 조직위원회 측은 “이번에 ‘여수선언’과 ‘여수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여수선언은 해양환경 오염과 어족자원 남획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해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지구적 차원의 공동노력을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여수프로젝트는 100억원 정도의 기금을 마련해 저개발국의 해양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한국이 해양문제의 리더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즘의 바다는 우리에게 더 많은 미래와 부(富)의 원천과 일거리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여수EXPO에 거는 기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바다를 알게 하고, 꿈을 꾸게 하는 집약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거다. 강동석 여수EXPO 조직위원장 말처럼 “EXPO에 다녀간 어린이·청소년 중 10명만 바다를 개척하겠다고 나선다면 한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EXPO는 해외 관광객을 위한 국제행사이기도 하지만 자국민에 대한 계몽과 교육의 기능이 강한 행사다. 이 행사를 위해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만 12조원이나 된다. 한데 개막이 40여 일밖에 안 남았는데도 ‘과묵한’ 조직위원회는 대국민 홍보에 여전히 ‘신중’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할 수 없이 이 지면을 털어 ‘홍보’에 나선다. 꿈의 크기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워 대한민국에 ‘대박’이 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