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장 유리 치우니, 더 푸근한 우리 옛 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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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호림박물관은 개관 30주년 특별전 ‘토기’전을 열며 공간 연출에도 신경 썼다. 유물을 유리 진열장에 박제처럼 넣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흙 위에 과감하게 늘어놓았다. 토기의 복권(復權)이다. [사진 호림박물관]

우리의 도자 사랑엔 편식이 심했다. 청자·분청사기·백자 등 자기(磁器)가 늘 주인공이었다. 토기(土器)는 미술사보다 고고학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 자체의 미학보다 어디서 출토됐느냐가 더 중요했다. 박물관 한구석의 역사적 자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 그릇의 시작, 토기만으로 꾸민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분관에서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토기’를 연다. 이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원전 1세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토기 200여 점이 전시실 3곳에 자리잡았다.

 토기는 곧 바람이었다. 옛 사람들은 토기에 마음을 담았다. 무덤 부장품으로 발굴된 토기들은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강이 있다고 여긴 듯 배 모양 토기를 무덤에 넣어 망자가 편안히 저승길을 가도록 배려했다. 당시 배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고대 선박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말이나 수레바퀴, 짚신 모양 토기 역시 비슷한 기원을 담았다. 오리나 닭처럼 새 모양의 토기는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안내하라는 기원을 담았다.

 토기는 또 시간이었다. 토기는 점토를 빚어 600∼1200도 사이에서 구운 그릇을 이른다. 자기는 고령토 등으로 1350도 이상에서 굽는다. 토기는 통일신라시대까지 널리 사용됐다가 자기의 출현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장독 또한 토기의 일종이다. 1만 여 년 가까이 한국인과 함께해온 셈이다. 깨지기 쉬워 자주 다시 만들었던 까닭에 시간에 따른 변화를 알 수 있으며, 형태와 무늬, 제작기술에선 종족이나 집단·시대상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토기는 대지였다. 마지막 전시실에선 유리 진열장 없이 흙 위에 다양한 모양의 토기를 늘어 놓았다. 바닥 둥근 항아리들과 이 항아리를 받쳤던 받침들이 단단히 대지를 딛고 서 흙에서 나왔음을 증언한다. 신사동 호림아트센터를 설계한 테제건축사사무소가 전시공간 연출에 참여했다.

 이원광 학예팀장은 “토기의 간결한 형태에는 소박한 멋이, 상형이나 장식 토기에는 뛰어난 조형 감각과 창의적 예술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개관 기념일인 가을에 국보·보물급 소장품으로 특별전을 꾸밀 예정이다. 9월 28일까지. 일반 8000원, 매월 마지막 목요일은 무료. 02-541-3523.

◆호림박물관= 간송미술관·삼성미술관 리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힌다. 농약을 만드는 성보화학 창업주인 윤장섭(90)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의 개인 소장품을 토대로 1982년 10월 20일 개관했다. 국보 8점, 보물 46점을 비롯한 1만 5000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도자 컬렉션이 강하다. 신림동 본관, 신사동 분관을 두고 매년 두세 차례 특별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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