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어설픈 한·일 기름값 비교 … 정부의 기업 때리기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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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권혁주
유통팀장

요즘 일본 기름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주유소에서 파는 보통휘발유 가격이 2월 다섯째 주(2월 26일~3월 3일) L당 2007.0원에서 3월 둘째 주(3월 11~17일) 2064.6원으로 2주 새 57.6원이 뛰었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www.opinet.co.kr)’에 나온 수치가 이렇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보통휘발유 가격 상승분(L당 22원)의 두 배 반이 넘는다. 세금을 빼고 계산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이 기간 세전 휘발유 가격은 일본에서는 69.1원, 한국에서는 20.2원 인상됐다. “일본 휘발유값은 거의 그대로이고 한국은 가파르게 올랐다”고 하던 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한 달 전 한국 정부는 “최근 일본보다 한국의 기름값이 더 빨리 올랐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단 일본은 엔화 강세 덕을 봤다. 또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은 정유 4사가 시장의 98%를 과점하는 반면, 일본은 8개 정유사와 4개 대형 도매업체가 주유소에 기름을 댄다.”

 이 말을 상당수 소비자는 “한국에서는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비싸게 받는다”는 소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내놓은 이 같은 해석은 적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요즘 일본의 휘발유값(세금 제외)이 한국보다 L당 100~200원 비싸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일본이 우리보다 경쟁이 더 치열한데 이만큼 더 비쌀 리가 없다. 더 들여다보면 당시 일본에서 기름값이 별로 오르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일본 내 수요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겨울 일본은 내수가 꽁꽁 얼어붙었다. 국제 시세에 맞춰 기름값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다 3월 들어 수요가 조금씩 늘고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기름값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전문가들의 해석이 정부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정부가 되돌아봐야 할 점이 있다. “정유사들의 과점 때문…” 운운하며 기업에 화살을 돌린 부분이다.

 기름값을 놓고는 1년 전에도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회계사 출신인 내가 기름값 원가를 따져보겠다”고 했다. 정유사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기름값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정부가 만든 알뜰주유소였다. 그런데 정부는 기름을 싸게 파는 알뜰주유소를 만들면서 국내 정유사에 기름을 대달라고 요청했다. 정유사들이 정말 과점 구조를 이용해 기름값을 비싸게 받았다면 그보다 더 싸게 대주는 외국 정유회사로부터 수입하면 그만이었을 터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부 입장에서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국내 기름값이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버린 셈이다.

 지난해 기름값 논란과 올해 ‘한국·일본 기름값 비교’엔 공통점이 있다. 확실한 논리적 근거 없이 정부가 기업들을 비난의 대상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이걸 ‘가당찮은 기업 배싱(bashing·때리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물론 기업들이 담합해 가격을 왜곡하는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근거가 박약한 기업 비난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잖아도 기업 때리기가 난무하는 요즘이기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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