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신데렐라 퀸란 (2)

중앙일보

입력

2000년 4월 5일. 프로야구가 개막되는 날이었다.

식목일이자 공휴일이라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경기가 열린 4곳 중 3곳에서 만원사례를 이뤘다. 매진이 되지 않은 유일한 구장은 대전이었고 작년 우승팀 한화와 현대간의 공식 개막전이 펼쳐졌다.

헌데 뜻밖에 스타가 탄생했다. 바로 '탐 퀸란'이었다. 대구구장 기자실에 있던 필자에게 퀸란이 연타석 홈런을 쳤다는 소식은 한국야구에 또 하나의 용병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같이 들렸다.

주변에선 '잘 치는 용병이 하나 들어왔군'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잠시 후 3연타석 홈런을 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는 술렁였다.

개막 3연전에서 믿기 어려운 7개의 홈런을 쳐내며 바람이 넘겼다는 항간의 입방아를 잠재운 퀸란은 병살과 삼진 또한 만만치 않게 기록하며 6~8번을 오르내리다가 8번 타선에 고정되며 하위타선의 거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퀸란의 홈런 비결은 파워를 기초로 하는 V자형 스윙에 있다. 아래로 내려찍듯이 방망이가 하향비행을 하다가 임펙트 순간에 하늘을 향한다. 이 타이밍에 공이 제대로 얹혀지면 십중팔구 홈런이다.

구질은 직구를 선호하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기다렸다가 치는 것이 주특기다. 특히 높게 형성된 공은 그에겐 시쳇말로 밥이다. 팔이 긴 편이라 안쪽과 바깥쪽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슬러거들은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공을 당겨 쳐 곧잘 넘긴다. 퀸란 역시 홈플레이트에서 아웃사이드로 약간 빠지는 공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라고 귀뜸한다.

우승직후 인터뷰에서 소속팀의 우승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지만 내년 시즌 홈런왕에 도전해 보겠다는 욕심을 조심스럽게 피력한 걸 보면 개인타이틀이 프로에 있어 부와 명예를 동반하는 확실한 척도인지를 알게 한다.

올 시즌 37개로 홈런더비 1위인 동료 박경완(40개)와 우즈(39개)에 이어 3위에 머물렀지만 한국투수들에 대한 공략법을 충분히 인지한 만큼 내년엔 만만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다.

퀸란은 시즌 종반 의식적으로 밀어 치려는 자세를 간간이 보이며 바깥쪽 공을 유도하는 제스쳐를 비쳤고, 죽든 살든 무조건 친다는 야구에서 앞뒤상황을 고려하며 자기 공을 기다리는 야구로의 변신을 올 동계훈련을 통해 꾀할 생각이다.

68년생으로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4살인 그가 야구인생의 새로운 황금기를 이어갈지는 내년 봄 우리가 지켜볼 새로운 흥미거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