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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삭풍’한파 속, 게임동네는 ‘화창한 봄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스닥 시장 폭락과 11월 대란설 등으로 벤처업계가 흉흉하지만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분야가 있다. 바로 게임분야다.

시중에 돈이 마른 요즘 게임분야는 그래도 돈 걱정이 덜한 곳이다. 그만큼 유망하다는 반증이다. 온라인게임 최강자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하나로 얼어붙은 코스닥 시장에서도 공모가 7만원을 웃도는 10만원선 내외의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사양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1만5천여 개의 게임방은 한국 게임산업의 굳건한 ‘펀더멘털’이다.

지난 해 9천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게임산업 규모는 올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첨단게임산업협회는 국내 게임시장 규모를 2001년에는 1조1천5백52억원, 2002년에는 1조3천6백72억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오락실에서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수준이 아니다.

국내 게임산업 규모, 올해 1兆원

세계 게임시장 규모를 살펴보면 답은 더 분명해진다. 2000년 1천6백30억달러 규모에서 매년 20% 이상 성장, 2003년에는 2천6백87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반도체 세계시장 규모가 2천억달러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이처럼 부풀어 오르기만 하는 게임시장을 대기업이 놓칠 리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일등’ 아니면 싫어하는 삼성은 게임시장 진출에도 선두주자다. 삼성전자는 게임개발업체 이소프넷과 공동으로 개발했다는 온라인게임 ‘드래곤라자’ 상용 서비스를 10월 1일부터 시작했다. 말이 ‘공동’이지 개발은 이소프넷이, 개발비 지원은 삼성이 했다.

지난 7일부터 용인 에버랜드에서 9일 동안 열린 ‘월드사이버게임챌린지(WCGC)’는 삼성의 게임산업 의욕을 분명히 보인 무대였다. 삼성전자가 후원한 이 대회의 조직위원장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게임대회 준비기간부터 이모저모를 직접 챙겼으며 개막식에는 김한길 문화부장관과 이돈희 교육부장관이 참석했다. 게임 올림픽을 표방한 WCGC는 사상 처음 열린 대회라 운영상의 실수가 보이긴 했지만 ‘게임 코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게임 대회장인 에버랜드 곳곳에 내걸린 WCGC 플래카드에 어김없이 찍힌 푸른 삼성전자 엠블렘은 ‘삼성=게임산업 리더’라는 인식을 일반에 심는 효과를 발휘했다. WCGC의 주관사인 ICM은 내년부터 WCGC를 ‘월드사이버게임즈(WCG)’로 확대 개편, 매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열리는 ‘게임 올림픽’으로 격상시킬 계획이다.

그런데 ICM은 삼성전자와 게임 랭킹회사 배틀탑에서 각각 45%씩 출자한 회사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대회 이전에 배틀탑 지분 20%를 확보했다. ICM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배틀탑과 ICM 투자, WCGC 준비 등에만 1백70억원을 쏟아부었다. 그 정도로 게임산업에 대한 삼성의 의지는 강하다.

삼성보다 한 발 늦은 올 하반기부터 게임산업에 뛰어든 현대는 투자 및 전략적 제휴와 함께 해외시장 공략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온라인게임 전문업체 위즈게이트와 업무 제휴를 맺고 중국, 대만 등 해외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KRG소프트에 5억원을 투자하고 아케이드게임 업체인 인터존21과 필리핀에 자본금 13억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게임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 일본에서 열린 도쿄 게임쇼에는 인터존21이 단독 부스를 차리고 출품한 댄싱 게임기 ‘에이씨퍼커스(AC.Percuss)’ 홍보도 지원했다.

㈜SK는 온라인게임업체 제이씨엔터테인먼트에 10월 말에 5% 지분투자를 했다. SK는 지분투자가 끝나면 OK 캐쉬백 서비스와 연계해 게임 마케팅을 수행할 계획이다. 또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SK 그룹의 인터넷사업 과정에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 콘텐츠를 제공하게 된다.

대기업의 ‘역할론’도 제기돼

게임업계는 이같은 대기업들의 게임산업 진출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2∼3년 전 게임 하면 ‘오락’으로만 알던 척박한 시대에 힘들게 게임산업을 일궈온 게임 벤처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6백 개 이상 되는 게임사들 중 대부분은 자본금 5억원 미만의 영세업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그만 게임회사들이 없는 돈으로 힘들게 게임을 개발하고 게임리그 시장의 싹을 틔웠는데 이제 와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을 먹으려 든다”고 말했다. 돈이 된다니까 뛰어들었다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 손뗄 지 모르는 게 대기업의 속성이라는 게 기존 벤처 게임사들의 지적이다.

95∼96년에도 현대와 삼성 등 몇몇 대기업이 게임기를 비롯한 게임산업에 너도나도 손댔다가 성과가 없자 슬그머니 발을 뺀 ‘전과’가 있다. 최근에 게임산업이 활황세를 보이자 다시 그때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고 중소 게임사들은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이 게임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대기업이 해줘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영세업체가 하기 힘든 대규모 자본과 인력, 장기간의 개발이 필요한 게임기 시장은 대기업이 맡는 게 효율성 면에서 오히려 낫다고 말한다.

8천억원대 규모인 아케이드 게임 시장만 하더라도 무자료 거래와 불법복제가 판치고 있는데 대기업이 나서서 시장질서를 바로잡아 줬으면 하는 게 신생 아케이드 벤처사들의 바람이다.

문제는 ‘돈을 벌 수 있으니 무조건 뛰어들고 보자’는 한탕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기존 게임업계의 우려에 대해 대기업들은 ‘득실론’을 강조한다. 대기업이 게임시장에 참여해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하고 남는다는 입장이다.

우선 영세한 중소 게임 업체의 자금난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웬만한 온라인 게임 개발에도 투자비 몇 억원은 우습게 들어간다. 영세업체로서는 게임 하나에 사운을 걸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력이 막강한 기업의 참여는 게임산업 전체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게 대기업들의 주장이다.

기존 업체들보다 잘 갖춰진 IT 인프라도 대기업의 장점이다.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으로 좋은 게임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기존업체와 기술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업 및 마케팅에 대한 노하우가 뛰어나고 대리점망을 잘 갖추고 있는 점도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게임산업 진출 명분이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도 마케팅을 하지 못하고 판로가 없어 제품을 팔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인 현실에서 대기업의 유통망과 마케팅 능력은 기존 개발사들의 의욕을 북돋울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대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꼭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삼성자동차는 억(億)도 아닌 조(兆) 단위의 돈을 투자하고도 실패한 사업으로 기록됐다. 다른 대기업들도 수백억원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사례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삼성전자 서병문 미디어콘텐츠센터장은 “전문 게임업체들에게 부족한 IT 인프라와 개발관리, 마케팅 등을 대기업의 오랜 경험으로 보완하고 게임 벤처사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의욕을 극대화시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분배하는 것이 대기업의 게임사업 참여의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국내 게임산업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컨설팅 전문회사 게임브리지의 유형오 사장은 “대기업의 게임시장 진출은 우려할 만한 부분은 있으나 유통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부분도 있다”며 일정 부분 대기업의 역할론을 지적했다.

첨단 문화산업의 꽃이라는 게임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꽃망울을 더욱 화사하게 피울 것인지, 채 피지도 않은 꽃을 다 따 가버릴지 지켜볼 일이다.

파이낸셜뉴스 정보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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