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고교선택제 ‘위험한 실험’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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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서울시교육청의 2013학년도 고입 전형 방안 발표일(30일)을 나흘 앞둔 26일, 교육청은 어수선했다. 고교선택제를 올해 입시부터 개편할지, 유보해야 할지를 놓고 공무원들조차 의견이 갈린 것이다. 친(親)전교조 인사들은 “교육감이 당선무효형을 받을 수도 있어 이참에 개편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대다수 공무원은 “검토가 부족하다”며 신중론을 주문했다. 기자가 정책 담당자들에게 묻자 “교육감이 결정할 사항”이라며 답을 피했다. 공정택 전임 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를 손질하겠다고 공약했던 곽 교육감은 이날 항소심 3차 공판에 출석했다. 학부모들이 혼란스러워하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기자가 이날 강남의 한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은 걱정이 많았다. 중3 아들을 둔 임모(44)씨는 “입시를 8개월도 남겨놓지 않았는데 이랬다 저랬다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최모(45)씨는 “교육감 따라 고입이 바뀌면 도대체 어떻게 대비하라는 것이냐”며 불안해했다.

 고입제도는 선거 승리에 따른 정치적 전리품이나 이념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닌 교육 자체의 문제다. 정책 변경에 앞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곽 교육감의 공약이었던 고교선택제 개편은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개편안은 지난해 7월에야 나왔고, 평준화 시절로 돌아가는 A안과 절충안인 B안으로 좁혀진 것은 불과 넉 달 전이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의 배정은 이달 초 한 번 했을 뿐이다.

상당수 명문고가 자율고로 바뀐 상황에서 일반고 서열화가 얼마나 심각해질지, 현재 중2부터 적용되는 내신 절대평가제가 고교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곽 교육감은 이달 초 한 회의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는 실험·실적주의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백 번 옳은 말이다.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그 영향이 이떨지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곽 교육감 말대로 실험·실적주의에 빠진 역대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힘들게 했는가. 고입 전형 안은 매년 서울 중3 학생 8만 명의 진로가 걸린 중요한 사안이다. 곽 교육감은 조급증에서 벗어나 더 고민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게 곽 교육감이 실험·실적주의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길이다.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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