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30명 넘으면 무조건 나눈다, 세 목사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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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왼쪽부터 뿌리깊은교회 이민욱 목사, 역삼청년교회 최현락 목사, 동네작은교회 김종일 목사. 이 목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수화동작을 해보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회는 원래 공동체였다. 말씀과 믿음의 공동체를 지향해왔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 실천이 매우 힘든 대목이기도 하다. 갈수록 분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교회 또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들 사이의 유대조차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게다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보탬이 되는 신앙을 키워가기란….

 서울 강남 지역에서 자그마한 개척교회를 꾸려온 김종일(47)·이민욱(37)·최현락(36) 목사. 이들 세 목사의 ‘한집 살림’ 실험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교회는 일단 작아야 했다. 규모가 커지면 신자들 관계가 서먹해지기 쉽다는 게 이들의 공통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작은 교회를 마냥 고수하자니 돈이나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사업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해서 그들이 뭉쳤다. 한 지붕 세 가족, 교회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 목사의 ‘연합 사역’ 실험이다. 사무실은 지역주민을 위한 사랑방 마련에 힘써온 ‘동네작은교회’ 김종일 목사의 도서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방배동 주택가 이면도로변에 자리잡은 4층 상가건물의 1층, 18평 크기의 공간이다.

 여기에 ‘역삼청년교회’ 최현락 목사, ‘뿌리깊은교회’ 이민욱 목사가 이사온 게 올 1월 초. 덕분에 세 목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얼굴을 맞댄다. 세 교회가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사업을 궁리한다.

 23일 세 교회의 공동 사무실을 찾았다. ‘따로, 또 같이’ 돌아가는 실험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서울 강남, 한국 자본주의의 한복판 에서 지금 어떤 신앙이 피어나고 있을까.

 ◆신자 수 20∼30명 초(超)미니교회=세 목사는 철저하게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 신자 수가 20∼30명에 불과한 초미니교회다. 그러니까 30명이 넘어가면 어떻게든 교회를 나눈다는 얘기다.

 이름에 걸맞게 동네작은교회가 대표적이다. 김 목사는 2007년 하반기 처음으로 자신의 교회를 꾸렸다. 그 동안 세 차례 교회를 나눴다. 모(母) 교회까지 네 교회는 교회 아닌 교회다. 이들은 각각의 교회를 공동체라 부른다. 공동체마다 평신도·신학대학원생 등이 디렉터를 맡아 목사 역할을 한다.

 이들 네 공동체는 1년에 대여섯 차례 만나 한 식구임을 확인한다. 여름 휴가철에는 매 주말 마련되는 봉사 프로그램에 형편에 맞게 참가하면서 역시 이웃 공동체의 신자들과 섞인다. 각각의 공동체 숫자는 20∼30명. 네 공동체를 합치면 동네작은교회는 80∼90명 규모로 늘어난다.

 2010년 초 문을 연 뿌리깊은교회의 신자 수는 역시 30명. 명동의 한 레스토랑을 빌려 일요일 예배공간으로 사용하는 역삼청년교회 역시 신자가 30명 정도다.

 하필 30명을 고집하는 걸까. 김종일 목사의 작은 교회에 대한 소신은 뚜렷했다.

 “예수님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몸이 뭔가. 유기체다. 한데 신도 숫자가 30명이 넘어가면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그렇게 교회가 조직화되면 그 안에 힘의 질서가 생긴다. 내리 누르는 사람, 그에 저항하는 사람이 생긴다. 오늘날 교회의 여러 부작용은 이렇게 시스템화한 결과다.”

 이런 작은 교회에 제대로 된 예배공간이 있을 리 없다. 세 교회 는 기업체 사무실·카페 등을 빌려 사용한다.

 ◆삼인삼색(三人三色) 목회철학=지붕을 같이 쓰고 있지만 세 목사는 추구하는 목회철학은 제각각이다.

 이민욱 목사는 현장성을 중시한다. 노숙자·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은 물론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까지 교회가 어떻게 돕거나 접근해야 할지 입장이 서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목사의 뿌리깊은교회는 최근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 200명에게 점심 대접을 했다. SNS·전화 등을 통해 교회 바깥 외부인들로부터 자금·일손 지원을 받았다. 일종의 아웃소싱이다. 이 목사는 “앞으로 신자가 늘면 일부를 떼어 노숙자 돕기 등에 1년씩 전념토록 해 현재 신자 규모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최현락 목사는 청년선교를 목회 활동의 가장 앞머리에 놓는다. 덕분에 이 교회의 신자들은 대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다.

 세 교회의 ‘합방 목적’인 연합사역, 함께하는 일들은 어떤 게 있을까. 최 목사는 “현재로서는 세 교회가 체육대회나 봉사활동, 예배 등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물론 앞으로 뭐가 또 나올지 모른다.

 김 목사는 “ 사소한 일까지 모두 털어놓고 지낼 수밖에 없어 이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공동체성이 강한 교회를 다닌다는 점을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사무실 함께 쓰는 세 교회는 …

▶뿌리깊은교회

-소외계층, 소수자 돕는 데 주력
-신도 수 30명
- 담임 이민욱 목사 한 달 사례비 180만원. 한 달 헌금액 400만∼500만원

▶역삼청년교회

- 서울 강남역 주변의 청년 유동 인구를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2008년 봄 설립
-신도 수 30명
- 담임 최현락 목사 한 달 사례비 140만원. 한 달 헌금액 400만∼500만원

▶동네작은교회

- 세 차례 교회를 나눠 ‘남은이’ ‘그몸(그리스도의 몸)’ ‘헤브론’ ‘더작은’ 네 개의 공동체로 구성.
- 각 공동체는 신도 20∼30명 규모
- 지역주민 위한 사랑방 마련에 주력. 방배동에 카페 두 개 운영
- 담임 김종일 목사 한 달 사례비 180만원. 카페 수익의 절반은 장학사업 등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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