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값 20% 올랐지만 도시락값 안 올리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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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영덕 대표는 1948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현지에서 고교를 마쳤다. 73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물려받은 호텔·무역업을 했다. 93년 사업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한국에서 한솥도시락을 차렸다. 이 대표는 “돈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친이 미식가여서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도시락 업체를 직접 찾아가 비결을 배우며 사업을 준비했다. 모든 메뉴는 이 대표가 직접 맛을 보고 출시를 결정한다. [사진 한솥도시락]

온갖 물가가 치솟고 설렁탕 한 그릇은 1만원에 육박하는 요즘, 한 도시락 프랜차이즈 대표가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주인공은 한솥도시락의 이영덕(64) 대표다. 대체로 3000원 안팎인 도시락 값을 올해에는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2일 서울 역삼동 한솥도시락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식자재 값이 최근 1년 새 평균 20% 올랐다”며 “하지만 우리 주 고객이 물가 상승에 시달리는 서민층임을 생각해 한솥도시락은 값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가격 동결을 위해 한솥도시락은 전문 조달 업체를 통해 들여오던 식자재를 직접 농가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어찌 보면 1993년 1호점을 낸 뒤 20년간은 가격 상승 압력과의 싸움이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값을 올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지금도 돈가스 도시락을 2600원, 소불고기 도시락을 3500원에 팔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외환위기 때의 일화를 전했다.

 “한두 달 사이에 달러당 원화값이 800원에서 2000원 선으로 올랐다. 식자재 공급업체들은 값을 올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가맹점주들을 모아 사정을 설명했다.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공급업체들엔 올려주고, 소비자가는 올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가맹점주들이 ‘어려운 시기에 서민을 위한 음식 값을 올리면 안 된다’고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때의 고생은 가맹점주들에게 나중에 과실이 돼 돌아왔다고 한다. 경비를 아끼려다 보니 점포의 효율성이 훨씬 높아졌고, 값을 안 올리는 덕에 고객이 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중에 환율이 제자리를 찾으니 이익까지 늘어 1석3조가 됐다. 이 대표는 “요즘도 가격 정책에 관해 가맹점주들이 본사와 철학을 같이하고 있다”며 “올해뿐 아니라 버틸 수 있는 데까지 가격을 올리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한솥도시락’이란 이름에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객·가맹점주·본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서로 노력해 더 나은 도시락을 값싸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솥도시락은 3월 현재 562개인 점포를 올해 말까지 10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그간의 사업 속도에 비춰볼 때 상당히 급작스러운 팽창이다. 이런 목표를 세운 이유를 이 대표는 두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은 ‘가정 간편식’ 수요가 늘어서입니다. 1인, 2인 가구가 늘면서 따끈한 밥으로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도시락을 찾는 고객이 많이 생겼습니다. 또 ‘가맹점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괜찮은 자영업을 찾는 이들이 증가한 거지요. 1000호점까지 내려는 것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1000호점 개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솥도시락은 7월 7일까지 가맹점 계약을 하면 500만원 초기 가맹비 납부를 면제해주고 있다. 또 신한·우리은행과 손잡고 가맹점주가 대출할 때 해당 신용등급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위문희 기자

가정 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식사류, 그러니까 도시락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것들을 일컫는다. 요리할 시간이 부족한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시장이 커졌다. 요즘은 1인, 2인 가구가 늘어 가정 간편식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예 밥을 짓고 국을 끓여 파는 편의점이 생겼을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2인 가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현재 절반 가까운 48.2%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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