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의 성적표

중앙일보

입력

인류의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문학가들의 내신 성적 발표가 나왔습니다. 역시 1등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입니다. 이 성적표는 영문학 박사이며 미국 웨슬리 대학교의 부학장인 대니얼 버트가 매겼고 ‘호모 리테라리우스’(대니얼 버트 지음, 김지원 옮김, 세종서적 펴냄)라는 한글판 제목으로 옮겨졌습니다.

뉴욕대와 웨슬리대에서 문학 강의를 맡고 있는 지은이는 “등장 인물이 거주하는 상상의 세계를 얼마나 거대하게 창조해내고 인간 경험을 얼마나 광대하게 반영해 내느냐에 따라 작가의 위대성이 평가받는다면 셰익스피어는 성취도 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는 까닭에서 그를 1등에 올려 놓았습니다.

역사상의 문학가를 1등에서부터 1백등까지 서열을 매긴 지은이는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등수 안에 든 작가들의 수평적 평가를 포함해 동료 교수와 다수의 문학 연구가들의 연구 성과들을 섭렵, 책 속에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성과를 순위로 매긴다는 일은 참으로 허무맹랑할 뿐 아니라,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문학만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몫이 큰 예술 장르도 다시 없다는 생각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그 평가 역시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이처럼 작가의 성적 사정 작업에 따르는 무리함을 지은이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어요. 지은이 역시 이같은 작업이 가지는 위험과 무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인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바탕으로 문인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작업은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이를테면 지은이는 다른 문화권의 연구자가 서열을 매긴다면 자신의 성적표와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자신의 성적 평가가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이 성적표를 바탕으로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힙니다.

이 사정 작업에서 지은이는 여러 가지 기준 가운데에서 특히 작가의 문학적 영향력을 점검하는 데에 주력했고, 이 “문학적 영향력의 필수 요소는 바로 ‘혁신’ 이었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솔직히 말해 나는 과감한 생각으로 과거와 단절하고 급진적으로 세계를 재해석한 작가들을 좋아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책에 들어 있는 모든 작가들은 문학을 재규정하는 데 일조했고 후대의 작가와 독자들이 경쟁해야 했던 기준을 설정했다.”(이 책 8쪽에서)고 밝힙니다.

작가 1백인을 서열 순서로 나열한 뒤, 지은이는 각각의 작가가 가지는 문학사적 중요성을 분석합니다. 지은이는 “독자들의 생각을 자극하기 위해 각 작가의 경력과 성격의 핵심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판단력을 자극하겠다는 의도지요.

셰익스피어에 이어 2등은 단테가 차지했습니다. “현대의 어떤 작가도 단테가 중세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것처럼 자기 시대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다”(이 책 24쪽에서)는 것이지요. 단테가 2등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16등에 오른 T. S. 엘리엇의 단테에 대한 평가도 보탬이 됩니다. 엘리엇은 단테의 문체가 ‘보통 언어의 완벽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와 단테 다음으로 ‘세번째는 없다’며 1, 2등을 설정했다고 합니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지어낸 호메로스가 3위에 오른 것에 이어 4위는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차지합니다. 우리 독자에게는 톨스토이만큼 가까운 도스토예프스키가 겨우 15위에 오른 것을 보면, 톨스토이에 대한 지나친 평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지은이의 사정이 결코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 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경쟁자들의 평가까지 참고한 것이니, 그냥 두고 볼 수밖에요.

그밖에 제프리 초서, 찰스 디킨스, 제임스 조이스, 존 밀턴, 베르길리우스, 괴테가 10위 안에 랭크된 작가들입니다. 톨스토이와 괴테를 빼면 모두 영미문학권의 작가들이지요. 지은이가 영미문학권의 연구자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 아닐까요. 각 작가들의 삶과 문학의 우수성을 지은이는 짧게 이 책의 5-6쪽 안에 핵심만을 짚어내고 있습니다.

10위 권 밖으로 나오면서부터는 스페인어권의 세르반테스가 1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일본어 문학에서 ‘겐지 이야기’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가 12위에 오르는 등, 영역은 차츰 넓어집니다. 시인 두보(杜甫)(27위),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67위) 등 중국 문화권 출신 작가도 있고, 러시아의 유미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39위), 라틴 아메리카의 보르헤스(66위),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78위), 인도의 타고르(90위), 폴란드 출신의 아이작 싱어(95위) 등이 망라됩니다.

벌써 성급한 독자분들께서는 누가 몇 위밖에 못 올랐다는 것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며 집어치우라실 겁니다. 그러나 세계 인류 문학의 역사에서 숱하게 명멸해간 작가들 중에 꼽을 수 있는 1백명 사이에서 무슨 우열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양철북’의 귄터 그라스가 겨우 95위로 평가된 것에 반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39위로 평가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독자도 물론 있을 겁니다.

그러나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폭넓은 연구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지은이의 평가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지은이 스스로 인정한 평가이니까요. 단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인 1백명의 업적을 다양한 평가와 함께 살펴 본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책이 될 겁니다.

독자 개개인의 느낌과 평가와 무관하게 이 성적표에 오른 1백명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들 1백명의 문학적 성과는 바로 오늘날 우리의 문학을 건강하게 해 주는 토양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화두이지, 서열의 정교함이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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