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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명 비평지‘구운몽’ 창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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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아, 사랑해’의 고백에서‘쌈장’‘6mm’의 빛나는 아이디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생산하는 아이콘은 성공과 ‘대박’의 신화로 금테를 두르고 있다. 가짜 금장테를 벗기고 금메끼를 까고 나면 성공에 대한 구린내 나는 욕망과 알맹이 없는 가짜 기술만 남지 않을까? 첨단과 새로움과 젊음과 자유로 치장한 아이콘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설익은 꿈을 내다 파는 디지털 장사꾼의 술수를 벗겨내고 젊은이들에게 진정으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돌려 주어야 한다.”(구운몽 창간호 29쪽에서)

창간한 ‘디지털 문명 비평’ 부정기 간행물 ‘구운몽’(편집인 백욱인, 안그라픽스 펴냄)의 머리글을 쓴 편집인 백욱인 서울산업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입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의 문화를 점검하는 잡지로 창간한 ‘구운몽’은 옛 소설의 제목을 패러디해, ‘그냥 되는 대로 꿈꾸지 않고 꿈을 잘 굽고’ 싶으며, ‘우리는 꿈꾸고 그 꿈을 잘 구울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은 이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진정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맹신과 숭배만이 팽배하고 있다는 게 이 책 편집인의 생각입니다.

책을 낼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방식의 편집 방식을 택한 것은 대부분의 간행물들과 다르지 않은 형식이지요. 창간호인 이번 호에서는 ‘네트 이데올로기’를 특집의 주제로 정했더군요. 런던 웨스트민스터대 하이퍼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인 프란시스코 밀라르크, ‘문화과학’ 편집위원인 홍성태, 미디어연구가 이광석,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엽 님 등이 이번 특집의 필자로 나서셨습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정보 통신 기술의 혁명은 더 많은 자유와 더 큰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에 대해 꼼꼼히 비판한 밀라르크의 글이 특집 기사의 시작입니다. 이어 홍성태 님은 디지털화가 경제적 분권화와 민주화를 이루기보다 거대한 초국적 미디어 간의 통합 경향, 즉 미디어의 집중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하지요.

글쓴 이들의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광석 님은 테크노 시대의 물신들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계의 본질을 짚어내지요. 끝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에 부응하는 풍요의 눈속임을 지적하는 것이에요.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뿌리고, 수많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국제전화까지 공짜로 쓰게 하는 현란한 공짜 세례들이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IT업계의 광고 또한 글쓴 이들의 비판의 화살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n세대라는 조작된 상징으로 우리나라 십대의 목에 핸드폰을 달랑달랑 매달리게 한 광고의 막강한 힘을 분석한 것은 김종엽 님입니다.

디지털 문화에 대해 호된 비판을 이어간 창간호 특집은 1995년 1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생들이 발행하는 격월간지 ‘배드 서브젝트’에 실린 선언문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선언문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비판적 토론에서 우리는 흔히 하나의 테크놀러지로서, 또 하나의 사회적 힘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이론화 작업은 동시에 하나의 사회로서의 우리들 자신이 미래에 어떤 모습을 띠게 될 지를 상상 속에서 투사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이 책 109쪽에서)

특집 외에 ‘구운몽’에는 철학, 정책, 학술, 운동, 기술, 문화, 경제, 예술 등 각 분야 별로 이슈를 정리한 글이 풍부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변호사 김기중 님,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기협 님, 캐나다 토론토대의 홍성욱 님, 자유기고가 진중권 님 등 이 시대의 문화 담론을 이끌어가는 여러 분들이 글쓴 이로 참가해 넉넉한 읽을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구운몽’이라는 새 잡지 하나가 디지털이라는 화두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비평과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매체를 해석하는, 새로운 매체 환경에 알맞춤한 비평지로 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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