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드사들, 영세 가맹점이라면 학을 뗀다. “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연일 투쟁을 벌인 끝에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을 이끌어 냈다. 소비자는 더 무섭다.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것 아니냐”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1일 오후 서울 내수동 KB국민카드 본사에서다. “차나 한잔 마시자”는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의 초청으로 최승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과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이 카드사를 찾았다.
신용카드사-영세 가맹점-소비자 대표. 이렇게 입장이 다른 삼자가 공식적인 공청회 외에 사적으로 만난 건 처음일 것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수수료 논란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정작 카드업계와 가맹점·소비자 간에는 마음을 열고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최 사장은 “여전법 통과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논란이 식지 않아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대화가 시작됐다.
“소비자 민원을 상의하려 해도 카드업계와는 유독 대화할 통로가 없어요. 협회도 통일된 입장이 없는 것 같고….”(조남희 사무총장)
“카드사 간 경쟁이 심하니 입장을 모으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수수료 때문에 공격이 들어와도 방어조차 제대로 못하니 정말 답답했습니다.”(최 사장)
수수료를 놓고 이들이 정반대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형 가맹점들이 무작정 수수료를 깎으러 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으로 세금 수입이 늘어난 정부도 뭔가 내놓는 게 있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다.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는 게 다가 아닙니다. 지나치게 싼 대형 가맹점 수수료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결국은 다른 가맹점들이 비용을 떠안게 되니까요.”(최승재 사무총장)
“지금 대형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가 지나치게 내려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영세 가맹점주들도 그래서 더 박탈감을 느꼈을 겁니다. 문제는 대형 가맹점을 카드사가 압박할 수 없는 입장이란 거죠.”(최 사장)
“사실 제일 큰 수혜자는 정부죠. 카드 덕에 세금은 많이 거두면서 그로 인한 비용은 가맹점주 아니면 카드사에 떠넘기잖아요.”(조 사무총장)
“가맹점과 카드사가 큰 손해 없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 백 가지도 넘습니다. 카드 승인을 중개하는 밴(VAN) 수수료만 해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정부가 들여봐야 할 텐데.”(최 사장)
대화는 1시간3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영세 가맹점들과 제휴 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부터 “카드 칩과 메시지 전송 비용까지 줄이고 있지만, 수수료 인하 때문에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것 같다”는 고민까지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