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헌신짝 같은 상류층 비열함…시험 답 훔쳐내던 학창시절 싹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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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출연진의 빼어난 연기력은 연극 ‘모범생들’의 미덕이다. 왼쪽부터 수환 역의 박정표, 명준 역의 정문성, 종태 역의 김대종. [사진 이다엔터테인먼트]

과거에도 그랬지만, 최근엔 더 독해졌다. 검사·정치인·재벌 등 이른바 지도층 ‘때리기’ 말이다. 영화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등이 대표적이다. 상위 3% 계층이 겉으론 폼 잡지만 뒤로는 조폭보다 더 구리고 비열하다는 것을 폭로한다.

 현직 검사의 결혼식 장면을 시작과 끝에 배치한 걸 보면, 연극 ‘모범생들’(극본 지이선, 연출 김태형) 역시 최근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점도 있다. 상위 3%의 비열함이 어른이 돼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생겼다고 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부터 쭈-욱 그래왔다고 말한다. 상류층 부도덕성의 원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연극은 제도교육의 부조리함도 고발한다. 언뜻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상시킨다. 대신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예전 작품이 학교에서 주먹 좀 쓰는 친구들의 폭력성을 조명했다면, 연극은 제목 그대로 모범생이 주인공이다. 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훨씬 정교하고 치밀하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답을 훔쳐보는 건 기본이요,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조직화한다. 힘 좀 쓰는 친구의 약점을 들추어내 같은 편으로 편입시킨 뒤에 방패막이로 써 먹는다. 그래서 작품을 보노라면 문득 책상 머리에 앉아 공부만 해선 진짜 상위 3%에 들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스쳐 간다.

상대의 숨은 욕망을 간파해 내는 심리전, 더 강한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연대하는 정치력, 결정적 순간엔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카리스마 등등. 물론 그토록 용 써봤자 3%의 또 다른 상류층인 0.3%엔 게임이 안 된다는 것을 재빨리 인정하는 현실 인식 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하지만.

 출연진은 남자 배우 4명뿐이며, 세트 역시 4개의 책상과 의자가 전부다. 그래도 세련됐다. 남성 정장이 순식간에 교복으로 바뀔 때 객석에서 탄성이 터진다. 효과음도 다양했고, 내면의 불안을 춤으로 드러내는 시도도 신선했다. 탄탄한 대사, 연극적 상상력, 극적 구성력, 사회적 메시지 등에서 두루 합격점을 줄 만한 수작이다.

 ▶연극 ‘모범생들’=4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3만원.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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