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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긴급 채권단회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 '조건부 회생' 이 아니라 '조건부 퇴출' 이다. " (김경림 외환은행장)

추가 자구계획을 전제로 살려주는 쪽으로 기울던 현대건설.쌍용양회 처리방향이 자력으로 살아남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통해 퇴출시킨다는 원칙론으로 되돌아갔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런 입장을 현대측과 시장에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5일 예정에도 없었던 채권단회의와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지난 3일 발표된 현대건설.쌍용양회 처리방향이 '대마불사(大馬不死)' 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장의 평가는 채권단의 의지를 잘못 읽은 것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 자력생존 안되면 법정관리=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현대건설과 쌍용양회를 어물쩍 살려줄 것이라는 시각은 어불성설" 이라며 "자기 힘으로 진성어음과 물대어음을 못막으면 법정관리에 넣는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다" 고 거듭 강조했다.

문제는 현대건설이다. 현대가 살기 위해선 먼저 8일 투자신탁.종합금융.보험 등 제2금융권까지 참여하는 확대 채권단회의에서 기존 여신은 연말까지 만기연장해준다는 동의를 75% 이상 받아내야 한다.

금융권의 현대건설 대출은 은행과 제2금융권이 7대3 정도 비율이어서 제2금융권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현대건설은 당장 부도위기를 맞을 수 있다.

현대도 이를 감안, 이번주 초 추가 자구계획을 내놓을 것이란 게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설명이다.

채권단이 금명간 정몽헌(鄭夢憲)회장에게 감자와 채권단의 출자전환 동의서를 요구키로 한 것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동의서를 받아두면 현대건설이 시장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위기상황에 몰릴 경우 부도가 나기 전에 대주주 지분을 감자하고 채권단이 빚을 출자전환해 채권단 주도로 현대건설을 독자생존시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 그룹차원의 자구계획=이날 정부와 채권단은 그룹차원의 자구계획을 공개 요구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몽헌 회장과 현대건설은 더 이상 내놓을 게 없는 만큼 형제나 계열사의 도움을 이끌어내라는 것이다.

4일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이 "형제 계열사들의 도움이 중요한 때" 라고 한 발언도 이런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만약 현대건설이 부도를 낼 경우 여파가 다른 계열사들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라는 의미다.

외환은행 김경림 행장은 "현대가 내놓은 1조6천억원의 자구계획 중에 7천2백억원은 이미 이행했고 5천2백억원은 앞으로 달성가능하나 3천8백억원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며 "3천8백억원의 추가 자구계획을 그룹차원에서 마련 중인 것으로 안다" 고 설명했다.

◇ 예상되는 문제점=정몽구.몽준 회장이나 형제 계열사의 지원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그동안 정부가 현대측에 요구해온 계열분리 원칙엔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계열사들이 현대건설을 지원했는데도 현대건설이 부도를 낸다면 멀쩡한 계열사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폐해로 지적돼온 부실 계열사 지원을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하는 꼴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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