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방해, 삼성전자 4억 과태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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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방해한 삼성전자에 대해 18일 역대 최고인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조사관 출입을 막고, 자료를 폐기하고, 허위자료를 내는 등 조직적으로 조사를 방해한 혐의다.

 문제가 된 건 지난해 3월 24일 오후 2시20분 공정위가 휴대전화 유통 관련 조사를 위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급습했을 때의 일이다. 무선사업부로 가려던 공정위 조사관 5명은 정문출입구에서 보안용역업체 에스원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나와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조사 공문을 내밀었지만 “대통령도 사전 약속 안 되면 못 들어간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조사관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몸싸움도 벌어졌다. 조사관들의 112 신고를 받은 경찰까지 출동했다.

 같은 시간, 조사관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들은 이 회사 무선사업부 박모 전무는 자료 폐기를 지시했다. 직원들은 서둘러 책상에 있던 서류를 없애고 컴퓨터 3대를 텅 빈 컴퓨터로 바꿔놨다. 부서장 김모 상무는 공정위 조사관의 전화를 받았지만 “서울 본사에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오후 3시10분쯤 간신히 조사관이 현장에 왔을 땐 직원 한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조사관은 일단 철수했다. 김모 상무는 숨겨뒀던 자신의 PC를 가져와 조사 대상이 될 만한 파일을 전부 지웠다. 김 상무는 나중에 공정위 조사에서 “SK텔레콤 관련 파일을 검색해 다 지웠다”고 시인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의 조사방해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공정위가 찾아낸 삼성전자 내부보고서엔 “에스원 대처 잘했다. 담당부서 지시를 충실히 이행” “사전 시나리오대로 김 상무가 조사관 의도 확인 뒤 다음 날 조사에 응함”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삼성전자는 공정위에 당일 무선사업부 출입기록을 내면서 PC를 교체한 직원 이름을 뺀 허위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또 공정위 조사요원의 출입을 더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보안규정을 강화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 법인에 3억원, 이 회사 박모 전무와 김모 상무에 각각 5000만원의 과태료를 매겼다. 기존 최고액인 CJ제일제당의 3억4000만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공정위는 지난 15일 휴대전화 가격 부풀리기와 관련해 삼성전자에 과징금(142억8000만원)을 매길 때도 조사방해를 이유로 23억8000만원을 가중시켰다.

 공정위 권철현 서비스업감시과장은 “사전시나리오에 따라 고위 임원이 조사방해를 지휘했고, 이번이 삼성전자의 세 번째 조사방해라는 점에서 법상 최고 한도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5000만원)과 2008년(4000만원)에도 공정위 조사를 방해해 과태료가 부과된 적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앞으로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 준수와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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