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올리고 채팅…죄졌소?" 죄인 취급 부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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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복·군장을 착용한 남성 서바이벌 게이머가 ‘모의 총기’를 조준하고 있다. [중앙포토]

건설업을 하는 김모(40)씨는 최근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매달 나가던 ‘서바이벌 동호회’ 활동을 그만뒀다. 동호회 게시판에 모의 총기 사진을 올렸다가 집까지 압수수색을 당했다. 김씨는 “순수한 취미 활동인데 경찰이 범죄자처럼 대해 아예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군 하사 출신인 오모(31)씨도 온라인에서 동호회원들과 모형 수류탄에 대한 얘기를 하다 “군에서 유출한 것 아니냐”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이미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관계기관에 알렸고, 동호회 게시판에도 ‘모형’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오씨는 관련 글을 모두 지우고 동호회를 탈퇴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이 ‘총기 단속’에 나서면서 5만여 명에 이르는 서바이벌 동호회원의 불만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형 국가 행사 때마다 서바이벌 동호회를 괴롭혀대니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이들을 단속하는 근거는 ‘총포와 아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소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문제는 ‘아주 비슷하다’는 문구가 애매모호해서 경찰이 자의적으로 단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바이벌 동호회원들은 2009년 이 같은 법 규정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김종대 재판관은 “비슷하다는 것이 모양의 유사성인지 기능의 유사성인지 불명확하고 ‘아주’라는 말도 매우 주관적이다”라는 소수 의견을 냈다.

 법이 모의 총기 단속 기준을 비현실적으로 설정해 서바이벌 동호회원들을 범법자로 몬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모의 총기는 0.2J(줄·1㎏의 물체를 초속 1m로 가속시켜 1m 움직이게 하는 분량의 에너지) 이하의 위력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서바이벌 총기 판매업자는 “0.2J로는 탄환이 5m도 못 날아간다”며 “서바이벌 회원들이 그런 위력으론 게임을 할 수 없으니 불법인 줄 알면서도 개조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경찰청 산하 특수법인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도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의 탄환은 50m는 나가야 한다.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홍콩은 2J, 일본은 1J이 기준이다.

 관련 법이 모호하고 비현실적이다 보니 경찰은 평소에는 모의 총기를 묵인하다 대형 행사 때만 반짝 수사를 하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특공대·군부대 등에서도 훈련 시 개조를 통해 탄속을 높인다. 평소엔 암묵적으로 (개조를) 인정해 준다”고 말했다.

 서바이벌 동호회원들은 경찰 단속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모의 총기 압수에도 벌금을 부과하고 범죄자 취급까지 당한다는 것이다.

동호회원 정모(28·프로그래머)씨는 “대형 행사만 있으면 동호회를 잠재적 범죄자인 양 단속한다”며 “관련 법을 개정해 범죄는 확실히 처벌하되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까지 괴롭히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엽·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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