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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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13면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han)은 움직임을 낚아채는 작가다. 걸어가는 행인도, 질주하는 마차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순식간에 ‘얼음’이 된다. 움직임의 역동성을 정지된 조각에 표현하고 싶다는 그는 “태초에 생명 이전에 우주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한다. 돌 하나만 하더라도 200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면 얼마나 많은 움직임이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그다.

루이뷔통 ‘아트 토크’에 온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

여행 가방으로 명성을 얻은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이 그의 ‘움직임’을 놓칠 리 없다. 베이앙은 2009년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대규모로 개최했는데, 루이뷔통은 궁전에 전시된 그의 작품 ‘모바일’을 냉큼 사들여 뉴욕 5번가 메종에 설치했다. 지난해 열린 에스파스 루이뷔통 도쿄 개관전에도 그의 작품을 내세웠다.

13일 서울 청담동 313 갤러리에서 열린 루이뷔통 ‘아트 토크’ 현장

루이뷔통 코리아가 올해 ‘작가와 함께하는 아트 토크’의 주인공으로 베이앙을 초청했다. 13일 서울 청담동 313 갤러리에서 베이앙은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아시아는 영감의 원천”이라는 말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이날의 주제는 ‘고고학적 현대성’. 그는 “고대와 현대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며 “예술사를 읽으며 옛것의 아이디어를 현재의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역사를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현재를 잘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나를 잘 알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죠.”

한국은 이미 서너 차례 방문했다는 베이앙은 한국에서 무엇을 느꼈느냐는 질문에 “경제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한국만의 다이내믹함이 있다. 그 파장이 주는 역동성이 좋다”고 말했다.

그의 예술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사진, 조각, 비디오, 설치작품 등 장르를 넘나든다. 첨단 기술에도 관심이 많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그래서 그에게 작품이란 작가와 관객을 연결해 주는 ‘그 무엇’이다. 그가 “내가 뭘 그렸나보다 관객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단순한 평면 조각을 연결해 만든 그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것도 그 단순함에 저마다 자신을 투영하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색 위주의 모노크롬 스타일을 즐겨 구사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저 색깔만 썼을까’ 하고 생각을 시작합니다.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죠. 예술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단, 그 질문은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써야겠죠.”

그의 작품은 얼핏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파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파들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상징하는 강렬한 힘과 속도에 대한 묘사를 구현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미래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 “파시즘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운을 뗀 뒤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미래파에서 좋아한 것은 진보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대량생산 시기에 예술도 함께 진보했죠. 하지만 문제는 도덕까지 자동적으로 진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술에는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을 까딱거릴 때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느냐, 총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 않나요.”

예술가로서의 고민에 대해 그는 예술과 돈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명성이 높아지면 작품을 찾는 사람이 늘죠. 그럼 고민이 시작됩니다. 수요에 맞춰 작품을 많이 만들 것인가, 아니면 희소성의 원칙을 지킬 것인가. 또 있습니다. 시장에서 통하는 프로페셔널한 작업에 치중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크레이지한 작품에 도전할 것인가. 10여 명에 이르는 직원과 이런 주제들에 대해 자주 토론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트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그는 자신이 소수의 매니어가 아닌 다수의 대중을 위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나 바흐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는 이유도 시대라는 맥락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제 자신이 그 정도의 거장은 아니지만 그런 지점에 도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대중은 유혹이고 그 유혹은 때로 덫이 되기도 하죠. 예술가로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머릿속에 존재하는 개념을 시각화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크리에이티브란 결국 디스커버리와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시각 예술세계를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죠. 제가 아티스트가 된 이유도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쉬웠기 때문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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