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정책의 역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2호 02면

명절이나 출퇴근 때의 고속도로는 매우 혼잡하다. 운전자들은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지불했는데 고속은커녕, 저속이니 말이다. 그래서 퀴즈다. 이럴 때 정치인들은 어떻게 할까.

김영욱의 경제세상

첫째, 고속도로가 혼잡하니 통행료를 깎아주자. 둘째, 통행료를 올려 혼잡을 줄이자.

답은 1번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런 법안이 국회에 여러 번 올라와서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 모두 이런 법안을 제출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도 출퇴근 시간대 통행료를 50% 할인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래서 출퇴근 통행료가 20~50% 낮아졌다. 전형적인 정치논리다. 일본 민주당이 2009년 5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비법이기도 하다. 그들이 내건 공약이 무상보육, 무상 고교 교육,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였다. 집권엔 성공했지만 얻은 건 빚이다. 국가부채가 집권 후 1년6개월 사이에 50조 엔(670조원)이나 늘었다. 일본이 요즘 소비세 증세 문제로 떠들썩한 까닭이다. 재정 감당이 안 되니 세금을 더 걷겠다는 논리다. 애초부터 돈을 아껴 썼으면 이런 사달이 벌어질 턱이 없는데 말이다.

경제논리는 정반대다. 고속도로 이용자가 많을 때는 통행료를 올려야 혼잡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게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돈도 아끼고 혼잡도 막을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해법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경제논리만 숭배하자는 건 아니다.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정치논리는 중요하다. 지적하고 싶은 건 요즘처럼 정치논리로만 치달으면 나라경제가 거덜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라가 망한 뒤에 정치가 무슨 소용이랴. 정치가 살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경제논리를 준수하면서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정반대다. 경제는 내팽개치며 ‘퍼주기’ 일색이다. 그러니 고민이다. 이런 정치권에 나라의 장래를 믿고 맡겨도 될까 싶어서다.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논리와 경제논리, 포퓰리즘과 반(反)포퓰리즘의 문제다. 요즘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이나 공약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카드수수료법이 그렇다. 서민 보호라면서 영세상인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깎아주겠단다. 그러나 경제논리로 보면 정반대다. 서민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반(反)서민적이다. 카드사들이 바보가 아니라서다. 수수료율이 내려가는 바람에 적자가 나면 그 다음 수순은 구조조정이고 실업이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카드론 등 대출금리도 올라간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서민은 수수료를 덜 내서 늘어나는 수입보다, 빌린 돈의 이자로 나가는 돈이 더 클 수 있다. 바로 ‘노무현의 역설’이다. 그는 누구보다 친(親)서민적이었다. 하지만 재임 중 혜택을 본 계층은 부유층이었다. 서민은 오히려 집값 폭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서민 보호란 정치논리가 실은 반서민으로 변질되는 역설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전월세 상한제는 부작용이 훨씬 큰 공약이다. 왜 그런지를 알려면 요즘의 대학생 전세임대지원 사업을 보면 된다. 정부가 지원하니 대학 부근 전셋값이 폭등했다. 집주인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설령 ‘상한제 할아버지’를 한들 갖은 명목으로 임대료를 다 받아낸다. 무상보육도 그렇다. 정부가 지원하니 너도나도 어린이집에 몰려든다. 보육이 정말 필요한 맞벌이 부부는 어린이집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구른다. 정부 지원액만큼 보육료를 올리니 부모 입장에선 보육비 부담이 줄어든 것도 별로 없다. 청년고용 의무할당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의 모범 사례인 벨기에의 로제타 플랜이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했다고 해도 정치권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보수와 진보, 어느 이념이든 관계 없다.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만 준별하자. 정치논리에 현혹돼선 안 된다. 1959년 영국 노동당은 보수당을 제치고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선거 막판에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을 하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복지 운운하면서 세금 인하를 약속하자 유권자들이 ‘정치적 뇌물’로 의심해서였다. 본받아야 할 건 이런 지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고 나라도 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