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의 진실 넘어서기,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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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은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시네아스트이지만 서구에서 그는 이미 후 샤오시엔과 더불어 대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적인 산업화를 거친 대만사회의 도시풍경과 중산층 계급의 정체성과 도덕성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급속한 산업화는 대만사회를 유교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의 혼성체로 만들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대만인들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에드워드 양은 그 잔재와 상처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엉킨 공간과 시간의 블록들을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통해 섬세하게 풀어낸다.

상처에 대한 그의 감수성은 실로 냉정하고 끔찍했었다. '공포분자'(1986)나 '마장'(1996)에서 보여지는 대만 젊은이들의 초상은 차이밍량의 그것보다 더 잔인하고 비극적이다.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 그리고 둘'에서 에드워드 양의 시각은 좀더 부드럽고 온화해졌다. 결혼식에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을 맺는 3시간 분량의 이 영화는 한마디로 다양한 인간들이 엮어내는 삶의 결들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컴퓨터 회사의 중역인 NJ의 가족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일상적인 가족 이야기이기에 단순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삶의 행로가 사회적 환경과 뒤엉켜 있기에 또한 복잡하다.

NJ는 자신이 일하는 컴퓨터 회사가 재정적인 곤경에 처하자 투자자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을 만난다. 일본인 투자자와 협의하기 위해 일본 출장길에 나선 NJ는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의 유혹을 거절한다. 그의 장모는 처남의 결혼식이 있던 날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부인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12살된 딸 틴틴은 친구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학교에서 말썽만 부리던 8살된 아들 양양은 어느날 학교 여자아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돌출적인 행동을 한다.

'하나 그리고 둘'은 꼬마 양양의 단순한 질문('왜 사람들은 반쪽의 진실만을 보는 걸까')을 바탕으로 삶을 반추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특히 에드워드 양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럽고 사색적인 NJ의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

NJ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변화를 꿈꾸는 인물이지만 여전히 과거의 무게에 갇혀 있다. 그는 조심스런 사람이고 세밀한 문제들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내 생각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 들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NJ가 첫사랑의 여자에게서 느끼는 회한과 그녀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조정하려는 그의 도덕적인 태도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또한 NJ가 일본인 컴퓨터 기술자와 나누는 우정 또한 인간적인 냄새를 진하게 풍긴다. 나이가 들어 마음에 드는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경쟁사회에서 우정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비록 그것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 하지만 정서적 교감을 통해 우리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에드워드 양은 NJ가 처한 그런 곤경을 대만의 고층 아파트와 현대화된 사무실의 창문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사무실 내부와 네온사인으로 물든 빌딩 외부의 경계면(유리창)에 NJ를 위치시킨다. NJ가 일본인 사업 파트너와 그의 옛 애인에게서 느끼는 인간적인 갈등과 고민이 유리창에 불명료하게 비춰진다.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찍은 양양의 사진 또한 인간의 불투명한 정체성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도 그런 매체이다. 삶의 진실을 담고자 하는 영화는 '하나-하나'의 경계면에 위치해 있다. 반쯤의 진실과 반쯤의 거짓, 그 경계에 카메라가 놓여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NJ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딸, 아들, 처남의 삶을 동등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삶은 하나가 또 다른 하나와 만나면서 전체를 이루기에 순환적이다. 인간의 삶은 일대일 대응이자 일대다 대응의 함수로 구성된 전체이다. 이 함수의 집합을 에드워드 양은 '하나 그리고 둘'에서 가족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다양한 나이로 구성된 가족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느끼는 곤경을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꼬마 양양은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에게 혼잣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양양은 장례식에서 죽은 할머니에게 자신 또한 할머니처럼 늙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양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첫 장면(결혼식)처럼 가족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들 모두가 스스로 사회적인 환경에 대처해야만 하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인의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묘하게 오즈의 영화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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