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조각 초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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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기. 창의성을 추구하는 예술가에게 그것은 가장 큰 고민의 대상이다.

성공했을 때 그는 새로운 미학을 창출하는 것이며 실패했을 때 그는 '또 한명의 작가'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는 3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홍대 옆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조각가 김종구(37)의 초대전은 치열한 모색의 현장을 보여준다.

쌈지스페이스 1·2·3층의 전시실을 모두 쓰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다.

작가는 현장 퍼포먼스, 야외의 시간회화, 수직과 수평의 전도·혼합을 통해 다른 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제1전시실에 들어선 관객은 합판으로 된 커다란 방을 만나게 된다.

밀폐된 방안에서는 방열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쓴 작가가 기다란 쇠몽둥이를 그라인더로 깎아낸다.

오는 3~20일 매일 오후 2~5시에 작업을 계속하고 나면 바닥에는 2백40㎏의 쇳가루와 50㎏의 쇠막대만 남게 된다.

바닥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수평앵글로 설치돼 날마다 쌓여가는 쇳가루가 이루는 등고선과 발자국을 확대해 외부 모니터에 비춰준다. 깎아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쇳가루 제작이 목적이다.

"나를 잊고 힘든 노동에 몰두하는 동안 큰 것과 작은 것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을 갖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1층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쇳가루를 회화조각의 중요한 재료로 인식하게 되는 창작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장이기도 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양쪽 벽에 두개의 스크린이 마주보고 있다.

한쪽에는 들판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영상이 거의 움직임없이 지루하게 비춰진다. 맞은 편 스크린에는 들판에 하얀 사각형들이 드문드문 마치 양처럼 서 있는 장면이 보인다.

석고판에 쇳가루로 그림을 그려 풀밭에 세워놓은 작품들이다. 작가가 지난 7월 미국 뉴욕주 오마이 카운티의 야외에 2년 예정으로 세워놓은 25개의 야외그림이다. 비바람의 영향과 쇳가루의 산화에 따라 변화해가는 작품이다. 그 앞에 핀 꽃과 풀도 작품의 일부를 이루게 되는 무작위와 변화의 조각이다.

3층에는 대형 사진 인쇄물이 병풍처럼 서 있다. 작가가 쇳가루를 종이 위에 줄줄이 뿌려 쓴 글씨를 촬영한 것이다.

글씨들을 수평앵글의 비디오카메라로 확대해 찍으면 쇳가루들은 작은 동산들이 있는 황량한 구릉으로도 보인다. 정면에서 본 글씨는 서예이자 회화이며 옆에서 확대해 보면 조각이다.

한쪽 옆에는 2백70㎝ 높이의 '산나무'가 천천히 돌아가게 된다. 한반도 산맥의 울퉁불퉁한 축소형을 수직으로 세워 나무모양을 만들었다. 위의 카메라가 찍은 산나무의 수평모습은 정교한 산맥의 지형도다.

수평과 수직의 시각에 따라 글씨가 풍경으로, 나무가 산맥으로 보이는 이중구조다.

작가는 "'…잴 수 있을까?'라는 전시주제는 실제로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이다.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이 의문을 따라가는 과정이 나의 조각작품"이라고 말한다.

3개층의 전시를 차례로 보면서 관객은 보는 각도에 대한,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풍화해가는 작품에 대한 다양한 사색을 하면서 작가의 고민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9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영국 런던 첼시 미술·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해 귀국한 작가가 6년 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이다. 02-314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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