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금융시장, 원전폐기 결정에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만 정부가 27일 원전 건설계획을 폐기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현지 금융시장과 산업계에 다소간의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장쥔슝 대만 행정원장은 27일 안전과 환경 문제 때문에 지난해 3월 착공한 북부 해안도시 쿵랴오의 제4호 원전 건설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쿵랴오 원전에는 초기공사에 지금까지 433억 대만 달러(미화 14억 달러)를 들인 상태. 지난 2월말 30% 진척도를 보인 이 계획이 최소되면 900억 대만 달러(미화 29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에 따라 원전 공사를 맡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과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겠지만 만성적인 전력 부족과 공급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는 대만의 반도체와 산업계에도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수탁가공생산) 업체인 TSMC와 세계 10대 PC업체인 에이서, D램 생산업체인 모젤 비텔릭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두달전부터 정부측으로부터 원전 건설 폐기방침이 새어나오자 우려를 표명해왔다.

대만은 최근 반도체 호황을 타고 해외 업체들의 아웃소싱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큰 수혜를 보고 있으며 대대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신설라인은 주로 신추 공단과 타이난 신(新) 공단에 집중되고 있다.

신추 공단의 경우, 전용 소형 발전소를 구축해 놓고 있으나 전력 사용이 집중되는 여름에는 공급불안정이 예상된다. 타이안 공단의 경우, 고압송전선의 부설작업이 지연되고 있어 임시 방편으로 내년 6월경에 변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원전 건설 포기로 향후 전기 요금 인상 가능성도 있어 대만 산업계는 불만이다. 국영 대만전력공사는 4호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전기요금이 향후 5년간 최소 15% 인상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장 행정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만은 4호 원전이나 다른 발전설비가 없었도 2007년까지 충분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간지 중국시보에 따르면 2007년까지 2천550메가와트(MW)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대만 기업협의회의 프랭크 칼루치 회장은 이에 대해 대만의 전력 예비율은 오는 2008년에 8.3%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대만이 목표한 20-25%의 예비율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 건설을 재추진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현재 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발전량은 전체 전력공급량의 18%를 차지한다. 화력발전소가 72%이고 수력발전소는 10%에 불과하다.

장 행정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민자 발전소 거설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지난 몇년간 발전소 사건설을 신청한 15개의 민간기업들 가운데 지금까지 대만 최대 그룹인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 하나만이 상업용 발전을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이처럼 대만의 산업 인프라가 취약 상태를 면치 못하자 몇몇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모젤 비텔릭은 캐나다나 독일에 웨이퍼 가공공장을 설치할 계획으로 현재 입지선정 막바지 단계에 있다.

이번 결정으로 대만 정치의 불안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진보당은 총선 당시 원전 건설 폐기를 공약했으나 국민당측은 경제성장을 위해 원전 건설을 불가피하다는 입장. 당페이 전행정원장이 지난달 퇴진한 것도 이 문제가 한 원인이었다.

대만의 원전 건설 폐기 발표는 당장 타이베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쳐 대만달러화가 급락했고 주가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타이베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결정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9월 대만의 신용등급을 감시 대상에 넣기로 결정한데 대해 제4호 원전 건설이 폐기돼 전력부족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한 이유로 지적한 바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