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건, 검·경 수사권 갈등 2차전으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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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검찰과 경찰의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8일 현직 경찰관의 검사 고소 사건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경남 밀양경찰서 정재욱(30·경찰대 22기) 경위는 지역 폐기물 처리업체가 폐기물 5만여t을 농지에 무단 매립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업체 대표 P씨를 구속한 정 경위는 지역 언론사 기자와 공무원 연루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P씨의 배임·횡령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인터넷 주식사이트에 “피해자 제보를 바란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사가 진척이 없자 업체 측은 “정 경위가 과잉 표적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경찰에 수차례 민원을 냈다. 이어 12월에는 직권남용 혐의로 정 경위 등을 창원지검에 고소했다.

 창원지검 밀양지청 박대범(38·사법연수원 33기) 검사는 1월 정 경위를 불러 피고소인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 경위의 ‘폭언과 협박’ 주장이 나왔다. 정 경위는 박 검사가 “야 인마. 뭐 이런 건방진 자식이 다 있어. 너희 서장, 과장 불러 봐?”라며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창원지검 측은 “박 검사가 평소 자신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정 경위에게 잘못된 수사를 질책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진 것이지 폭언이나 협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12일 창원지검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창원지검은 보도자료에서 ▶수사 지휘는 적법절차에 따라 이뤄졌고 ▶폭언과 협박, 수사 축소 종용은 없었으며 ▶사건의 본질은 과잉 표적수사로 인권침해 시비가 된 경찰관이 검사를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밀양지청장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가 선임돼 검찰이 축소수사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히려 변호사 선임 후 광범위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2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 발령난 박 검사가 경찰 출신인 새누리당 이인기(59) 의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수사하자 경찰이 이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기획고소’한 게 아니냐며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대검 공안부는 지난주 대구지검으로부터 이 의원 수사 진척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기도 했다.

 경찰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 김헌기 지능범죄수사과장은 이날 “정 경위가 (박 검사의) 모욕행위가 있었던 1월 20일 직후 주변에 고소 의사를 이미 밝혔고, 박 검사가 이인기 의원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번에 알았다”며 “‘기획고소’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한바탕 ‘기싸움’을 벌였던 검찰과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또 한번 충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이 박 검사에 대한 피고소인 소환조사를 거듭 밝히고 있어 검찰도 대응 방법을 놓고 고심 중이다. 그러나 한 경찰관의 돌출 행동으로 인해 사정기관의 양대 축이 충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검찰과 경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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