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로 오지 마세요’ 역설의 퍼포먼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일본 설치미술가 오토모 요시히데가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 설치한 ‘위드아웃 레코드’ 안에 서 있다. 80개의 낡은 턴테이블이 돌아가며 바늘의 마찰음과 두드림만으로 합주를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1년 8월 15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시내의 한 공원에 1만3000여 명이 모였다. 6000㎡ 규모의 공원 바닥이 온통 천으로 뒤덮였다. 일본 전역에서 보내온 후로시키(風呂敷·보자기)를 잇댄 것이다. 흙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의 농도를 낮춰 보자는 기원이 담겼다. 참가자들은 천 위에서 악기·프라이팬·냄비 등 저마다 들고 온 물건을 두드렸다. 지휘자는 일본 전위음악의 선구자 오토모 요시히데(大友良英·53).

그 해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충격을 받은 그는 후쿠시마의 고립을 막고자 이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행사의 캐치 프레이즈는 ‘오지 마세요.’ 대재앙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음악제는 기본. 과학자들은 방사능에 대해 강연했고, 푸드코트에선 각 지역 음식물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 인터넷 실시간 영상을 본 이는 25만 명.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을 맞아 방한한 오토모를 지난주 만났다.

오토모는 지난해 ‘프로젝트 후쿠시마’때 후로시키(보자기)를 연결해 행사장인 공원 바닥을 덮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동기는.

 “분노와 자책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하는 분노였다. 일본엔 54기의 원전이 있다. 그 지경이 되도록 많은 일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후쿠시마에서 자랐는데.

 “9∼18세까지다. 사태 후 한 달 뒤 그곳에 가 옛 친구·친지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산과 물,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는데 방사능 수치가 높다고 했다. 뭔가 해야 했다.”

 -당신에게 후쿠시마는.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던 곳이다. 도쿄와 가까운데도 시골 같다. 보수적이고 답답했다. 도쿄를 위해 전력을 공급하는 식민지 같은 곳이었다.”

 -대재앙에서 예술이 뭘 할 수 있을까.

 “재난의 현장에서 예술가들은 하잘것없는 존재다. 경찰·군인이 더 필요할 거다. 하지만 생존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예술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미디어가 되는 것, 그게 예술의 역할이다.”

 -행사가 8월 15일에 있었다.

 “함께 기획한 엔도 미치로(60)는 일본 펑크음악의 전설이다. 그가 ‘1945년 이전에 일본은 바깥에서 식민지를 만들었다. 이후엔 국내에서 후쿠시마 같은 식민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일본은 똑같은 과오를 반복했다. 정말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8월 15일에 행사를 열었다.”

 -사람들을 모으는 건 위험하지 않았나.

 “세슘이 덜 검출되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공원의 세슘 지수는 0.5μ㏜(마이크로시버트), 사람들은 터놓고 얘기하길 원했지만 정치인들은 숨기기 급급했다.”

 -올해도 행사가 있나.

 “8월 15일부터 20일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해처럼 전국 곳곳에서 후로시키를 모을 거다. 이번엔 그걸 깔개가 아니라 깃발로 만들 생각이다. 다채로운 깃발이 나부낄 거다. 모두가 다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서울서도, 뉴욕서도 깃발을 올릴 수 있다.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세계 깃발 지도를 그릴 수도 있다.”

 오토모는 9일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7월 1일까지 열리는 ‘x_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전의 서막이다. 80개의 낡은 턴테이블을 설치해 만든 ‘위드아웃 레코드’란 작품을 작동시켰다. 레코드판 없이 돌아가는 바늘의 마찰음과 두드림이 만드는 합주였다. 1960~70년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프로젝트 후쿠시마’ 역시 집단의 기억에 호소하는 페스티벌이었다. ‘‘x_사운드’ 전시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가인 영국의 하룬 미르자 등이 출품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