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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심에 기댄 정책이 불법 베팅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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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민규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한국 스포츠는 경기조작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없을까.

 경기조작의 뿌리는 불법 스포츠 베팅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경기조작과 불법 스포츠 베팅을 함께 다루는 국제적 기구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의 시장 규모는 3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합법 스포츠 베팅인 스포츠토토의 지난해 총매출액 1조8731억원을 훨씬 넘어서는 액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하는 스포츠토토 입장에서 불법 베팅 사이트는 합법 시장을 침해하는 경쟁자다. 하지만 불법 베팅 사이트가 성행한 원인을 스포츠토토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장지현 SBS 축구해설위원은 “스포츠토토에서 베팅을 접한 뒤 불법 온라인 사이트로 넘어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지적한다.

 불법 베팅 사이트는 합법 스포츠토토보다 환급률이 높은 게 특징이다. 스포츠토토 수익금 가운데 상당액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출연되지만 불법 사이트 운영자는 이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학부 교수는 “스포츠는 국민 건강 및 교육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체육 재원을 ‘빈자들의 세금’인 (합법) 베팅에 의존하려 했던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체육의 공공성에 대한 정부 인식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이 집계하는 체육진흥재원은 중앙정부의 국고예산,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관리·운용하는 국민체육진흥기금, 민간 체육단체의 자체 재원 등으로 구성된다. 2010년 체육백서에 따르면 전체 재원 규모는 3조5344억원이며, 이 가운데 지방비(2조6193억원)와 민간 재원(2327억원)을 제외한 금액은 6824억원이었다. 6824억원의 77.6%는 기금이 차지했고 나머지가 국고다.

 2002년까지는 국고가 기금보다 많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 기금이 국고를 앞질렀다. 기금 규모는 2003년 1726억원에서 2010년 5295억원으로 3.06배 증가했다. 반면 국고는 2003년 1426억원에서 2010년 1529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정 교수는 “기금 수익률이 떨어진다면 재원 마련을 위해 합법 영역에서도 더 정교하고 사행성이 높은 게임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체육 재정을 스포츠 베팅에 의존하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스포츠 도박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최민규 문화스포츠부문 기자